황금들판
황금들판
  • 이운우 <청주시 원예유통과장>
  • 승인 2014.11.10 1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이운우 <청주시 원예유통과장>

모처럼 아내와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그렇지만 마음은 여느 나들이 때처럼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장모님이 아흔하고도 네살이나 더 드셨는데 치매증세가 있어 요양원에 계신데 면회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내를 지나 들판으로 나오니 말 그대로 황금들판이다. 금새 마음이 확 풀어진다. 한편으론 저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지기 까지는 얼마나 많은 농업인들의 땀이 녹아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벼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먹는 쌀이 탄생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까.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되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못자리 하기전에 황토 흙을 경운기로 날라 쌓아놓고 볍씨를 침종(싹이 뜨도록 물에 2~3일 담가 놓는 것)한 볍씨와 못자리판을 준비하고 아버지께서는 황토 흙을 채로 걸러 곱게 만들고 나는 그 흙을 모판에 담아놓으면 어머니께서는 볍씨를 모판에 고루 뿌리고 약간의 흙으로 덥는다. 그러면 동생은 모판을 날라 한쪽에 쌓아놓는다. 못자리 만들기는 동네 이웃과 바람이 없는 날을 택해 모판이 놓여진 논 위로 대나무 활대를 꽂아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든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모든 사람들이 날라 가는 비닐에 매달려 고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30일을 키운 모를 이양(본논에 옮겨 심는 것)한다. 그 후 병해충 방제로 두세번 약을 뿌려 주고 물대기와 물 끝기를 제때에 해주면 된다.

벼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앙기(모내기), 착근기(뿌리가 땅에 정착하는 것), 분얼기(가지치는 시기), 신장기를 거쳐 유수형성기(어린 이삭이 분화하여 벼 알의 껍질이 형성되는 시기), 수잉기(이삭 패기 직전 알이 배는 시기), 출수개화기( 이삭 패는 시기)를 거쳐 결실기가 되어 벼의 일생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150일 정도 정성을 다하면 지금처럼 황금 들판이 되어 콤바인으로 머리 깎듯이 추수해 말려서 도정공장에서 도정하면 하얀 쌀이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안구정화도 해주고 먹고 살 수 있는 양식도 만들어 주시는 농업인들의 땀방울에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든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핸드폰 한대 팔면 쌀을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데 경제적 가치도 없고 힘만 드는 농사를 하지 말고 수입하는 것이 이익이 아니냐고 주장하는데 그런분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황금들판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농업이라는 것이 우리 먹을거리만을 생산해주는 생명기능 뿐만 아니라 저수지 역할로 수해예방 기능, 공기정화 기능, 정서 함양기능 등 공익적 기능까지 한다는 걸 그분들은 모르고 하는 말일까?

해맑은 얼굴에 해탈의 눈빛으로 우리를 맞으시는 어머님께서는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는 못하시지만 얼굴 가득 반가움을 표하신다. 자손으로서의 죄스런 마음을 감춰 보려고 여기서는 목욕도 자주 해드리고 또래의 말벗 동무들이 있어서 집보다는 훨씬 나을실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을 해보지만 한쪽에서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해 창밖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눈길을 주어본다.

벼들은 일생을 농부들의 힘에 의해 저토록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풍성한 수확을 기다는데 벼보다 아흔네번이나 더 사신 어머님은 일생에 얼마만큼의 수확을 하셨는지…. 지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신지…. 어머님께서는 나처럼 젊어보셔서 내 마음을 아시겠지만 나는 어머님처럼 늙어보지 못해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어이 늦지 않게 얼른 가라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어머님의 해맑은 눈빛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가 주름 또한 저물어 가는 가을 저녁햇살에 비쳐 내 눈으로 크로즈업 되면서 또다시 내 마음을 노랗게 물들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