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42 - 동민 여러분~
단상(斷想) 42 - 동민 여러분~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3.06.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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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시인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집 앞 놀이터가 분주합니다. 초등 고학년은 학원에 다니느라 보이지 않고 아직 더 놀아야 사람 노릇을 할 풍뎅이 닮은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들만 가득합니다. 아기들은 놀이터를 잡아먹을 듯합니다. 미끄럼틀은 구멍이 날 지경이고, 그네는 하늘까지 치솟고, 시소를 타다가는 엉덩이가 깨질까 걱정입니다.

저러다가 철봉의 쇠붙이까지 먹어 치우지나 않을까 싶습니다. 옛날에 살았다는 쇠를 집어 삼키는 불가사리 같은 것들이 놀이터에 바글바글합니다. 어떤 불구덩이도 저 아기들의 기세를 꺾지 못합니다.

그렇게 기세등등으로 놀던 아기들이 빠져나갔습니다. 호젓한 풍경만 남았습니다. 엄마가 데리고 온 아기들은 엄마손 잡고 가고, 저 혼자 놀던 아기는 저 혼자 갔는데 누군가 잊고 간 세발 자전거 하나 뒤집힌 채 버려져 있습니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집에 가기 바쁜 아기가 제 타던 것을 내팽개치고 엄마의 젖냄새를 맡기 위해 성급히 두고 간 것이겠지요. 저렇게 놓여진 것을 다른 아기가 주워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서 가져가면 관리소에서 또 방송을 하겠지요.

‘동민 여러분~ 놀이터에서 알록이달록이 세발 자전거를 가져가신 분은 속히 가져다 주시기 바랍니다. 203동 1302호 아기가 어제부터 자전거를 찾으며 쳐울고 있답니다. 쳐우는 저것 때문에 부부싸움이 나서 지금 그 집 부부가 이혼을 하네 마네, 아기를 고아원에 버리네 마네, 할머니가 돌아가시네 마네 하고 있답니다. 자전거를 가져가신 분은 속히 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몇 번의 방송 끝에 찾으면 다행이고 못 찾으면 아기는 또 엄마를 졸라 새 자전거를 갖겠지요.

저 어린 것이 애지중지 갖고 싶다고 마트 바닥을 뒹굴고 떼쓰면서 갖고자 했던 것이지만 다른 무엇엔가 정신이 팔리면 언제 소원했냐는 심정으로 팽개치고 떠납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인가를 소중히 간수하다가 또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리면 버리고 떠나겠지요. 인지상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소중히 보듬고 아끼던 마음이 변하면 원수보다도 못한 사이가 됩니다. 죽고 못사네 했던 사랑의 마음이 죽도록 죽이고 싶게 미워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애초에 사랑의 심(心)을 내지 않았다면 미움의 염(念)도 일지 않을 것을, 무지한 우리네는 그저 눈앞의 달콤한 세발 자전거의 현란함에 눈이 멀고 맙니다. 그러다 더 현란한 무언가가 나타나면 가차없이 떠나는 게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찾습니다. 아기 때야 마음이 끄는대로 일엽편주 두둥실 떠난다 해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군들 제 마음을 제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제 일념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 또는 지니고자 하는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버려진 세 발 자전거가 초라해 보이는 것은 그 화려함이 대조되어서도 아니고 낡아서도 아닙니다. 누군가의 변심과 망각(妄覺)에 의해 버려진 폐물이 되었다는 그 서러움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리고 왔는지, 내가 버린 자전거는 어디서 녹슬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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