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제대로 가는 것은 물이니
아홉, 제대로 가는 것은 물이니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3.06.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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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上善若水(상선약수)니라.

水善(수선)이라 함은 利萬物而不爭(이만물이부쟁)하고,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인 까닭, 故(고)로 幾於道(기어도)니라.  

居善地(거선지)하고 心善淵(심선연)하며, 與善人(여선인)하고 言善信(언선신)하며, 正善治(정선치)하고 事善能(사선능)하며, 動善時(동선시)하여 夫唯不爭(부유부쟁)하니, 故(고)로 無尤(무우)니라.

- 참으로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물 말고는 없다/ 물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은 두루 이롭게 하면서도 오로지 제 길을 가며, 남이 꺼리는 자리에 머무는 까닭, 그러니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저 머물 자리에 머물 줄 알고, 마음은 그윽하며, 일을 함에 서툴지 않고, 때에 맞춰 움직이면서도 도대체 자기 주장을 하지 않으니 거기에 뒤탈이 없다.

上善若水, 이따금씩 볼 수 있는 말입니다. 보통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하는데, 나는 여기서 ‘善(선)’을 ‘제대로’라고 풀이합니다. 이 낱말을 거슬러 올라가면 ‘착함’보다는 ‘제대로’, 또는 ‘잘’이라는 뜻이 뿌리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에 대해 이야기를 주욱 하는데, 옛늙은이가 도에 가까운 것, 또는 도의 현현(顯現)으로 읽어낸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 물을 꼽으면서 ‘그래서 도와 같다고 한다(故幾於道)’는 겁니다.

도와 가까운 물이라면 먼저 두루 모든 것에 이로운, 참으로 그것 없이는 뭇 생명들이 한 시도 자기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음에도 전혀 자기주장(爭)을 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다들 싫어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마다 않고 거기를 자신이 머물 곳으로 여기면서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이 물이라는 겁니다.

그러고는 물의 성품을 닮은 사람의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딱 저 머물 곳에 머물고(居善地), 마음은 그윽하니 너그럽고 서둘지 않으며(心善淵), 말은 미덥고(言善信), 돌봄에 대해서는 치우침이 없으며(正善治), 일은 뒤처리까지 깔끔하고(事善能), 움직임은 때에 맞으니(動善時) 굳이 누구와 다투거나 자기 주장을 할 필요가 없다(夫唯不爭)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니 부작용이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이 중얼중얼 옛늙은이가 늘어놓는 삶의 진실입니다.

여기서 居善地(거선지)부터 動善時(동선시)까지로 삶의 방법이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動善時 뒤에 종종이(줄임표)를 치는 것이 제대로 된 독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야말로 ‘제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곧 聖人)의 삶의 갖가지 내용이 포함된다는 것, 너도 알지 않느냐’고 물으며 씨익 웃는 옛늙은이.

가만히 물을 봅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이 물입니다. 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기에도 물로 인해서 살아가는 갖가지 생명들이 가득하니, 온 세상에 물이 가득하다 해도 그른 말은 아닙니다. 그 물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제대로 된 길의 표상, 그러니 흐르는 물에게 배우라는 것이 또한 옛늙은이의 말인데, 이것을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이 물이라는 말과 이어서 보면 온 세상이 다 스승이라고 해도 또한 억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은 겁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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