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35>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35>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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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교회

폐허 속 세워진 구원의 안식처

열악한 조건 속 교인들과 함께 새성전 건축

◈ 복음의 시작과 수난 단양은 일찍이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구석기시대(약 70만년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선사문명의 발상지다. 단양하면 '울고왔다 울고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누구든 처음 단양을 찾아 올때는 사방이 산으로 막혀 귀양온 것 같아서 울고, 떠날때는 인심좋은 이웃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울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단양은 1914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정식 명칭을 갖게 됐다.

이에 앞서 1910년부터 제천지역 김치경 전도사가 단양지역을 수시로 왕래하며 기독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913년 김 전도사는 단양면 상방리에 9평 남짓 기와집을 마련하고 몇몇 성도가 모여 예배를 올림으로 기독교 대한감리교회 단양교회(담임목사 임재선·단양군 단양읍 도전리) 93년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산간벽지 단양에도 일제의 탄압은 극심해 교인의 가정과 교회의 성종까지도 헌납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 발전한 단양교회는 1933년 교회 주택을 수리해 목조건물 21평의 건물을 신축하면서 이 지역 모(母)교회로 실질적인 틀을 잡았다.

1940년 당시 불편한 교통과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군내 장림, 고습, 적성에 교회를 개척하고 지역별 속회가 조직돼 성도들간의 기독교적 문화소통의 장이 마련 되었다. 또한 교회내 야간 중학교를 설립, 청소년 교육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문맹퇴치의 장으로 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교회를 시무하던 서영준 목사도 피란길에 올랐다. 교회가 인민군의 집회 장소로 전락하면서 교인들은 가정집에서 예배를 올려야 했다.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교인들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부모잃은 고아, 자식잃은 부모, 남편잃은 과부들을 위해 교인들의 기도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전쟁이 끝나고 피란길에 올랐던 주민들도 하나, 둘, 고향을 찾았다. 폭격으로 가옥과 가산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다시 새성전 건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열악한 조건에서 성전건축을 시작한 교인들은 강변에서 모래와 자갈을 나르고, 성미로 인부들의 노임을 주는 등 피나는 노력으로 단성면 하방리(옛 단양)에 새성전을 봉헌했다.

◈ 구단양에서 신단양으로

   
단양교회가 내외적으로 놀랄 만큼 부흥 발전한 것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다. 단양 역시 교통이 발달하고, 산업화 되면서 교회시설과 의식구조도 바뀌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교육관과 어린이집이 설립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이 시작됐다.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총동원 전도주일을 정해 온 교인들은 시내 전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고 주일저녁에는 전도 결과 간증보고회를 갖는 등 속회가 늘어나고 성도수도 배로 늘었다.

이처럼 교회가 발전을 거듭했으나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지역을 떠나는 교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담임목사마저 떠났다.

당시 단양교회는 수몰지역에 포함되지않아 보상금을 전혀 받지 못해 건물만 남겨놓고, 교인들은 모두 새로운 이주지로 옮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새성전 건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1985년부터 수몰 이주계획으로 신단양 조성과 이주로 혼잡을 이루었다. 교회도 신단양에 임시예배처소를 마련하고 주일예배도 1부, 2부로 나누어 담임목사는 신단양과 구단양을 오가며 예배 인도를 했다.

그러나 보상에서 제외되면서 이전 터조차 분양받지 못해 어린이집 자리를 분양받아 신축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진정으로 이마저 어렵게 됐다. 천신만고 끝에 현재의 터를 분양받아 성전을 건축하고, 1985년 7월 20일 기공 예배 가졌다. 단양교회 93년의 역사속에는 이처럼 피나는 노력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 사도행전적 일하는 교회

"1913년 5월 9일 창립하여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며,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신 주님께 더욱 감사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임 목사는 1984년 11월을 시작으로 20여 년이 넘게 이곳 단양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사도행전적 일하는 교회'를 2006년 교회 표어로 정한 임 목사는 "교회는 어머님의 품처럼 언제 누가 찾아도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힘들고 피곤할 때 언제라도 달려와서 기도하고 위로받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복음 증거하는 교회 말씀을 배우는 교회 봉사로 섬기는 교회 기적을 보이는 교회를 실천 목표로 삼고 있는 단양교회는 93년 역사의 수많은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10곳이 넘는 지교회를 개척했으며, 해외 선교지 필리핀만가니스교회, 중국동광교회, 러시아무친스크교회 등을 개척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가 수고하며 관심과 사랑을 나누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관계중심적 전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임 목사와 교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쾌한 공기! 신선한 말씀! 행복한 교회' 단양교회가 국내 및 세계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평신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더욱 힘차게 발돋움하고, 지역복음화와 강화된 역량의 고성이 교회와 지역을 넘어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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