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2>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2>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18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로라 신이라 불리우는 '발퀴리'

용사의 낙원으로 인도하는'발퀴리'

 

   

 



헬리콥터 편대로 베트콩 마을을 무차별 폭격하면서 화약 냄새가 '향기롭다'고 하는 전쟁광 킬고어 대령의 말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지옥의 묵시록'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1979년에 메가폰을 잡은 대표적 전쟁고발 영화다. 지옥의 묵시록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특히 킬고어가 폭격을 시작하며 헬리콥터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바그너의 '발퀴리'를 틀어댈 때는 음악까지도 저리 잔인하게 쓰일 수 있는가, 절로 탄식하게 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바그너의 '발퀴리'는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바그너의 '니벨롱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중 '발퀴리(Die Walkire)' 3막의 서곡인 음악의 원래 제목은 '발퀴리의 비행'이다. 발퀴리는 북유럽 신화에서 전장(戰場)의 하늘을 날아다니다,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전사를 찾아 용사의 낙원으로 인도하는 여신들이다. 바그너의 '발퀴리'에서도 거침없는 전쟁을 묘사하며 장쾌한 선율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전쟁광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도 바그너의 음악이었다고 한다. 전쟁광들이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하다니, 아이러니하기 만하다.

바그너의 음악에 나오는 '발퀴리'는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主神) 오딘을 섬기는 싸움의 처녀들이다. '발퀴리'는 '싸움에서 죽은 전사(戰士)를 고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신들은 평소에는 천국에서 전사들을 접대하다가, 인간계의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전사(戰士)가 있으면 용사의 낙원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는 임무를 띠고 있다. 여신들은 백마를 타고 공중을 달리거나, 백조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닌다.

대개의 경우 혼자 사는데, 때로는 영웅의 아내나 연인이 되는 행운의 발퀴리도 있다. 바이킹의 오래된 신화집 '에다'에 핀 족(族)의 세 왕자가 발퀴리를 아내로 맞이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들은 백조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다가 호숫가에 내려 앉아 아마(亞麻)를 짜던 중 왕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녀들은 왕자의 신부가 되어 7년간을 행복하게 살았지만,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하늘을 동경한 나머지 8년째 되던 해 왕자들이 집을 비운 사이 하늘로 날아갔다.

오로라는 극지방의 밤하늘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기상현상이다. '오로라'의 어원은 새벽 빛(黎明)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1621년 프랑스의 과학자 피에르 가센디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Aurora)의 이름을 따서 '오로라'라는 이름을 지었다.

아우로라(Aurora)는 새벽(黎明)의 여신으로 태양신 아폴론의 누이 동생이기도 하다. 오로라는 그리스신화에서는 새벽의 여신이지만 북유럽 신화에서는 '발퀴리의 빛'이라고 불린다. 발퀴리는 말을 타고 공중을 달리는데, 그녀들의 갑옷에서 나오는 빛이 오로라라는 것이다. 용맹한 전사 바이킹족에게 발퀴리는 오로라의 신이다.

'입을 딱 벌리고 홀린 듯이 바라보게 되는 현란한 아름다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2000년 전에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글이다. 성서 외경 '매커비서' 1절에는 '비단 옷을 몸에 두르고 중천을 가득 매우고 있는 기사(騎士)들'이라고 오로라가 표현되어 있다.

태양 표면에 폭발이 발생하면 우주공간으로부터 전기를 띤 입자가 지구로 날아온다. 이 입자는 지구자기(地球磁氣) 변화에 의해 극지방 부근의 고도 100~500km 상공에서 대기 중 산소분자와 충돌해서 생기는 방전현상이 발생하는데, 과학에서는 이것을 오로라라고 부른다.

오로라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지구자기의 북극을 중심으로 반지름 약 20~25° 부근의 계란형 지대로, 이 부근을 오로라대라고 한다. 대개 고위도 지방에서 나타나지만, 드물게 저위도 지방에서 관측되는 경우도 있다.

에스키모 사람들에게는 오로라를 죽은 사람과 결부시킨 신화가 많다. 그들은 죽은 영(靈)들이 새로이 명계(冥界)로 오는 자를 맞이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는 램프 빛이 오로라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태양신 아폴론이 북극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다가 그리스로 곧 돌아가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북쪽 하늘을 형형색색의 오로라로 빛나게 한다고 한다.

그린랜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빙하의 신'이 비치는 빛이 오로라라고 하고, 툰드라 원주민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산모의 고통을 줄여주고 아이의 탄생을 축복해 주는 것이 오로라라고 믿고 있다. 성경에도 오로라가 언급되어 있다.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욥기 3722) 여기에서 금빛은 오로라를 뜻하는 것으로, 오로라를 하나님의 위엄에 비유한 것이다.

바이킹의 전사들은 밤이면 전쟁터의 하늘 위로 찬란하게 펼쳐지는 오로라를 바라보며 전장의 공포와 고독을 달랬을 것이다. 낮 동안 피 흘리며 싸우다 죽어간 동료를 '발퀴리가 용사의 낙원으로 데려가고 있구나'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그들은 비겁하게 살아남기 보다는 명예롭게 싸우다 죽기를 원했기에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전사로 불릴 수 있었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오로라의 신 발퀴리가 있었다. -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