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딸 40년만에 극적상봉 '작은 관심'이 '큰 일' 해냈다
양부-딸 40년만에 극적상봉 '작은 관심'이 '큰 일' 해냈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13.02.03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수진 율량사천동 주무관 공문발송 등 노력 결실
한 사회복지사의 노력으로 40년만에 양부와 딸이 상봉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청주시 율량사천동 사회복지사 민수진 주무관(사진)의 노력끝에 지난해 11월 이모 할머니(65)가 40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양아버지를 만나게 됐다.

청주시 사회복지공무원 10년 차인 민 주무관이 이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1월 초 영세민 신청을 위해 동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민 주무관의 눈에 처음 띈 건 여느 남자보다도 세 배 정도는 굵은 손마디. 시골에서 한평생 고생만 하신 팔순의 외할머니의 그 손이었다.

할머니는 부산 태생으로 아홉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피붙이없이 혈혈단신으로 남겨졌다. 배운 것이 없어 부모 이름도 모르고, 집주소도 모른 채 자기 이름석자만 가지고 옆집 아주머니 소개로 양딸로 보내졌다가 바로 파양당하고 오갈 곳이 없어 무작정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는 시장 통에서 이집 저집 심부름을 하며 밥을 얻어먹으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17세 되던 해에 자기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출생신고조차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민등록을 하려면 호적이 필요했고 딱한 사정은 시장 통에 퍼졌다. 평소 이 할머니를 보살펴 주던 동네 반장이 선뜻 본인의 호적에 자녀로 등재시켜 주민등록을 만들게 됐다. 그러다 지인을 따라 충북으로 내려와 남 농사를 짓고 결혼도 하지 않은채 20년을 넘게 보냈다. 양아버지와는 소식이 완전히 끊기게 됐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나이가 들자 집주인은 할머니를 내쫓았다. 할머니는 결국 청주에 와서 식당 설거지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민수진 주무관은 할머니의 힘든 인생이 너무도 불쌍해서 눈물도 났지만 순간 반신반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도 한방울 안 섞인 동네사람이 양부가 됐다는 사실도,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런 고마운 분을 여태 한 번도 안 찾아봤다는 것이 의아했다. 할머니는 “내가 여태 까막눈이라서 그랬다”고 하소연했다. 할머니는 어릴 때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한번 찾아갔었는데 너무 많이 바뀐터라 길을 잃은 후로는 엄두도 못내고 지냈다고 한다.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호적 상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재산조사를 거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로부터 받아야 할 서류들이 있다. 할머니가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민 주무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양아버지 이름을 조회해 그 주소지로 부양의무조사에 관련된 공문을 보냈다. 2주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민 주무관은 “헤어진지 40년 이상 지났고 지금까지 딸을 찾지 않은 것을 보면 호적만 올려준 남남이지, 자식인가. 이 할머니는 잊혀진 이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11월 25일이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 접수 마감 날인 일요일 근무를 하고 있는 민 주문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청주터미널인데요. 90은 되가는 백발노인이 봉투하나 들고 딸을 찾는다고 하는데 집도 모른다고 한다. 봉투의 우편물 발송처가 율량사천동주민센터라 전화를 드렸다”며 한 시외버스 기사가 알려왔다.

이날 민 주문관은 강서지구대의 도움을 받아 이 할머니와 양부를 상봉시켜주었다.

민 주무관은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을 이렇게 가족처럼 거둬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며 “내 평생에 이런 일을 경험할 수 있어 내 직업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