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는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11.25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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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검찰이 성욕만 채웠다” 신랄하다. 검찰 내부에서 나온 (익명의) 자성의 목소리 중 하나인데 표현 수위가 민망할 정도다.

주말엔 서울 남부지검 소속 윤대해 검사가 실명으로 검찰 수뇌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검찰, 개혁만이 살길이다’,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검찰 개혁 방안’이라는 두 편의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그는 지난주 연이어 터진 김광준 부장검사 수뢰 사건, 정 모 검사의 성추문 사건을 언급하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너무나 수치스럽고 이젠 정말 갈 때까지 갔다는 생각을 하게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의 검찰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비판했다. ‘정치권력에 편파적인 수사’, ‘재벌 봐주기 수사’,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독점한 무소불위의 권력’, ‘검사의 부정에 무감각한 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권력’ 등 지금까지의 그릇된 검찰 권력에 스스로 매스를 들이댔다.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에 이어 최근의 부장 검사 수뢰 사건 등 특임검사가 수사한 사건들이 자체 감시망에 의한 수사가 아니었다는 점도 꼬집었다. 그는 “이들 사건이 외부에서 언론에 문제가 되거나 경찰에서 수사에 착수한 후에야 뒤늦게 검찰이 나섰다”며 검찰의 자정 능력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대책도 내놓았다. “(검찰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그는 검찰 개혁 방안으로 검찰 기소배심제 도입, 검찰의 직접 수사 자제, 상설 특임검사제 도입을 제시했다.

주목하는 건 기소배심제다.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소배심제는 오래전부터 검찰의 기소 독점권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론돼왔다.

2010년 스폰서검사 사건(부산·경남 지역의 건설업자로부터 검사 10여명이 성 접대를 받고 뇌물을 수수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기소배심제 도입 여론이 일었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국민이 견제할 수 있도록 한 취지이기 때문에, 특히 기소독점권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말만 요란했을 뿐 당시에만 반짝 여론이 형성됐다가 유야무야 없었던 일로 넘어갔다.

당시 검찰은 특임검사제는 받아들였다. 검사 비리를 자체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김광준 검사 사건처럼 ‘비리가 밝혀지면 수사를 하도록 한’ 특임검사제는 사후 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처음 이 사건을 밝혀냈을 정도로 검찰의 자체 감찰 기능은 마비 상태였다. 윤 검사가 주장하는 상설 특검제 도입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뒤늦게 기소배심제와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 방안을 들고나왔다. 그가 취임한 때가 지난해 8월이니 뒷북도 한참 늦은 뒷북이다. 진작에 했어도 모자랐을 검찰 개혁을 인제야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꼴사납다.

야권이 연일 검찰 수뇌부의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한 총장도 명단이 올랐음은 물론이다. 여론은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이 기회에 외국에서 판·검사를 수입하자, 음서제 같은 ‘로스쿨’을 폐지해야 한다, 떡검사에 이어 성검사까지 등장 등 비판이 신랄하다. 대검찰 홈페이지 자유발언대엔 연일 검찰을 비난하는 글이 올려지고 있다. 홈페이지 관리자가 비판 수위가 높은 글들을 삭제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중 한 가지 뼛속에 와 닿는 글이 눈에 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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