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2.05.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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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취재1팀장(부국장)

'세월 이기는 권력 없다'라는 말이 요즘 자주 오르내린다.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측근 비리는 임기말 어김없이 터져 나온다. 이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차관의 사태를 보면 과거 정권 실세들의 말로와 꼭 닮았다.

'방통대군', '대통령의 남자', '대통령의 멘토'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최 전 위원장이나'왕비서관',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 전 차관은 지금쯤 억울하다기 보다는 권력무상을 더 느낄 듯 싶다. 그 중 박 전 차관이 느끼는 권력무상의 충격은 훨씬 클 것이다.

대우맨에서 이상득 의원 보좌관으로 11년을 보낸 박 전 차관은 MB정권 초기만해도 그저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실세였다. 대선 핵심 조직인 선민국민연대를 이끌었고 대통령 형님을 모신 최측근은 권력을 독점하게 이르렀다.

중간에 권력투쟁도 있었지만 곧바로 살아나 화려하게 변신하곤 했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비리설은 하나가 끊어지면 또 하나가 돌출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배후설, CNK 주가조작 사건, SLS그룹 이국철 회장 로비 사건 등등.

그러면서도 그는 버텨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민주당이 나를 공격한 게 95번이다. 지금도 되묻고 싶은데 95번 중 단 하나 팩트가 확인되거나 입증된 게 있느냐. 대한민국에서 나처럼 철저히 검증받은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무사히 고비를 넘기는 듯 했던 그는 그러나 이번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앞에선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것도 권력의 양대축이었던 최 전 위원장과 함께 였다.

더 놀라운 것은 추가로 쏟아지는 각종 국정 전횡과 정치 추문이다. 특히 세계 3대 철강회사로 발돋움한 글로벌 기업 포스코와 관련된 박 전차관의 개입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사업 시공사로 포스코건설이 선정되는 데 개입됐다는 정황부터 시작돼 2009년 초 정 회장 선임 과정에 당시 현직에서 물러나 있던 박 전 차관이 직접 후보자를 면접하며 좌지우지했다는 얘기로 확대됐다. 또 일부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경쟁 후보였던 윤석만 전 사장은 민간인 사찰을 맡았던 총리실 공직자윤리지원관실에서 뒷조사를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포스코 역대 회장은 정권 교체와 함께 매번 바뀌며 정권과 명운을 함께한 것으로 알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드러난 건 처음이다. 설상가상으로 포스코 주가는 한때 76만원까지 가던 것이 30만원대로 반토막이 났다. 그에게 권력은 안 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무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권력자라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세상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도 부하와 씨름을 하다 쓰러지자 목 놓아 울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 온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秦始皇)은 자신의 칭호를 왕에서 황제로 바꾸고 아들을 이세황제, 그 다음을 삼세황제라 하여 자자손손 만년토록 이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처럼 기세 등등하던 진시황의 왕조는 2대 15년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결국 천하의 권력도 '시간의 얼굴'은 막을 수 없다. 권력도, 미모도, 재력도 세월이 가고 철이 지나면 기울기 마련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을 권력말기 되새겨볼만하다. 12월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권력 내려놓기 연습을 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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