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三人行)
삼인행(三人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1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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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강대헌 <교사>
   세 명의 여자가 길을 간다. 강금주, 서명숙, 한비야.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그만 두고 전심(全心)을 다해 남편을 돕다가 어느 날 두 아이를 데리고 호주로 유학을 떠나 늦깎이로 법학을 공부해 시드니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NSW(New South Wales)주 대법원 변호사 자격을 받은 강금주가 귀국하여 새로운 역할을 자청했다. 24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발행해 오다 지난해 12월 갑자기 고인이 된 남편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1984년부터 청소년들(teens)의 말 못할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가뭄의 단비 같은 위로를 안겨 준 쪽지의 가치는 귀하기만 하다.

"우리 쪽지에 와서 자기 문제를 남기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자기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거 아닐까요 그 답에 귀 기울이는 10대들이 있는 이상 미래도 희망적이에요

남편의 죽음이란 생의 위기 앞에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어렵고 고된 일을 떠맡겠다고 진로(進路)를 바꾼 강금주, 그를 마땅히 이 시대의 아름다운 개척자로 부르고 싶다.

'맹숙아, 아방(아버지) 왐시냐 올레에 나강 보라' 제주 토박이 서명숙이 엄마에게서 무시로 들으며 성장한 말이라고 한다. 올레는 제주도말로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로 들고 나는 진입로를 뜻한다. 몸에 밴 골목길 같은 것이다. "길이라는 게 눈으로 보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 비우고 정리하고, 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걸으면서 하는 참선을 행선(行禪)이라고 해요. 마음을 정화시키는 거죠"

서명숙이 제주도에 길을 연결하고 있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확장되는 변곡점, 소우주인 자기 집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최초의 통로가 올레입니다. 자기네 집 올레를 나서야만 이웃집으로, 마을로, 옆 마을로 나아갈 수 있어요. 올레를 죽 이으면 제주도뿐 아니라 지구를 다 돌 수도 있지요."서명숙이 길을 만드는 이유는 다분히 사유적(思惟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느 날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길을 떠났다가 영국에서 온 한 순례자가 "돌아가서 너희 나라에 길을 만들면 어떠냐"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올레라는 이름의 트래킹(tracking) 코스를 만들고 있는 서명숙, 그를 마땅히 이 시대의 아름다운 개척자로 부르고 싶다.

국제 NGO 월드 비전(World Vision)에서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지니고 지난 9년간 긴급구호 활동을 하던 한비야가 올해 9월부터 학생이 된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학교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과정(MAHA, Master of Arts in Humanitarian Assistance)에 입학통지서를 받아 또 다른 미지(未知)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겠어' 세계 도처의 재난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다가 언제부턴가 각 나라와 단체들의 구호정책과 매뉴얼이 크게 상충되거나 적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것을 깨닫게 된 한비야가 직접 구호이론을 공부해 현장과 접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마침내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어떤 약속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려고 한다. 다시 지도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마음이 가볍고도 개운하다. 그리고 설렌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으로 삶의 모델이 되었지만 필요한 공부를 위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우려는 한비야, 그를 마땅히 이 시대의 아름다운 개척자로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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