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참으로 추웠네
지난 겨울 참으로 추웠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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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겨울철 식단에 우리가 흔히 대하는 수산식(水産食)은 뭐니뭐니 해도 명태(明太)다.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여 우리 식성에 맞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본래 명태란 이름은 함경도 명천(明川) 태(太)씨가 연승어법을 사용해서 잡은 고기라 해서 지명의 명(明)자와 성(太)자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명태처럼 많은 이름을 가진 어류도 드물다는 점이다.

그것은 씀씀이와 가공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린다. 국거리와 찌개거리에 따라 '생태', '건태', '북어', '선태', '묵태', '노가리'와 원료로 하여 가공한 '더덕북어', '명란젓', '맛살', '사슬적'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한겨울 대관령 덕장에 매달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얼리어 말린 것을 '황태', '동태'라고 하여 명태 중에서도 '최고의 맛'으로 친다.

동태는 동해안 지방의 겨울철 작업으로 가슴지느러미 부분에서부터 꼬리 부분까지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피를 뺀 다음 물 표백으로 동겨울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에 4~5번씩 민물을 바꾸어 가면서 20마리씩 싸릿대로 엮어 걸어 겨울을 나는데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하면서 건조되는 것이 황태요, 동건명태, 동태인 것이다. 생각만해도 뼛속까지 으스스 스며드는 추위를 느낀다.

그런데 지난 설날을 전후하여 1주일 정도를 우리 가족은 마치 대관령 덕장에 매달려 추위속에 오돌오돌 떠는 '동태'신세가 되었다.

지난 초겨울 갑작스럽게 이곳으로 집을 옮겼다. 옮긴 이 집은 옛날 한옥으로 지독하게 추운 집이었다. 물론 근래에 보기 드물게 강추위가 온 탓도 있지만 코끝이 매섭게 추웠다.

얼마큼 춥냐면, 저녁에 사온 귤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먹으려니 마치 애들이 밖에서 뭉쳐온 눈뭉치 같았다. 껍질이 딱딱해 끄떡도 않아 주먹으로 탁 치니 사과가 부서지듯 아사삭 으깨진다.

그리고 방 천장엔 허이연 서리가 오듯 성에가 끼고, 벽은 물을 뿌린 듯 습기가 배 벽지가 덜렁댄다. 또 입김을 불면 허옇게 입김이 나왔다.

그러니 아내와 아이들은 아랫목 따스한 곳에서 옹기종기 이불을 쓰고 앉아 나올줄을 모른다. 방바닥도 전체가 따뜻한게 아니고 아랫목만 좀 따뜻해서 그야말로 냉방 중 냉방이었다. 마치 전술한 대관령 동태덕장의 강추위를 방불케 했다.

특히 아내는 임신을 해서 만삭의 몸으로 행동거지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러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틈새로 한기가 들어올 만한 곳은 온통 테이프와 종이로 막았다.

석유나 전기난로를 피울까도 했지만 단칸방이란 문제와 아이들의 화재위험 때문에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엄동설한에 주인한테 얘기해서 조치를 해달라고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설명절 3일 연휴 중 설날인 가운데 당직근무까지 끼었으니 객지에서 집에도 못가는 몸과 마음으로 더욱 추웠다. 사람들은 설날이랍시고 집으로, 가족의 품으로 들떠서 물결처럼 거리를 누비는데, 우리 동태가족은 추위에 떠는 한심스러운 명절 연휴였다.

가난이 유죄인가! 추운 겨울이 유죄인가! 에에라, 오늘 저녁엔 웬수풀이나 하듯 아내한테 으스스하게 얼어붙은 동태나 사다가 찌개나 해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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