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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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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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오소희 <회사원>
오소희 <회사원>

엄마! 비명을 질렀다.

앗! 소리보다도 먼저 엄마 소리가 나온 것은 순전히 무의식 속의 외침이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졌다. 순간 얼굴을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고, 나는 온몸에 힘을 줘 두 무릎과 팔꿈치가 바닥에 닿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뚜기처럼 일어나 살펴보니 다행히 얼굴은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곧바로 엄마를 부르며 현관으로 뛰어갔다. (두 손 하늘 향해 들고서) 나의 출근을 배웅하고 돌아서던 어머니께서 놀라며 나를 맞았다. 순간 나는 어머니 품에 안기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랬다. 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엄마를 찾는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엄마를 찾았고, 사춘기 시절 친구관계며 이성문제, 하다못해 생리문제까지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꿈속에서 쫓기는 꿈을 꾸며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정말 귀신처럼 내 부르짖음을 듣고 달려 오셨다. 엄마는 내게 솜옷이고 방망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는 나와 동역자의 관계가 되었다. 일상의 일을 함께 이야기하며 방법을 찾아간다. 속상해 하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내 입모양만 봐도 내가 행복한지 속상한지 훤히 아신다. 나 역시 어머니의 눈을 보면 모든 것을 쏟아 놓고 싶은 마음이 인다. 어느새 나의 행복은 어머니의 행복이고 어머니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되었다. 나의 미래는 어머니의 미래가 되었고 어머니의 모습 또한 나의 미래가 되었다.

딸과 엄마는 숙명처럼 만난다는 말이 있다. 영원한 라이벌관계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그럴 때도 있다.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땐 심리전을 펴지만 결국 승복하는 쪽은 어머니다. 손해 보는 쪽도 어머니다. 평소 나의 이성은 어머니께 져드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감성은 늘 어머니를 이기려 든다. 그것이 가장 큰 불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잘되지 않고 있다. 역시 인격수양이 떡잎에 불과해서다.

나는 지금도 가슴에 각인처럼 새겨진 기억이 있다. 4살 때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살던 123동 아파트에서 161동 유치원까지 가 있었다. 아이들이 있었고 놀이터가 있었다. 나는 놀이기구를 탔고 어떤 어른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길을 잃은 것도 엄마가 찾을 거라는 것도 몰랐다. 한참 후 엄마가 보고 싶어 울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겨우 나를 찾아 낸 엄마는 나를 보는 순간 기절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나는 그때 하얗게 변해가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이 엄마를 흔들어 깨우고 물을 먹여주었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나를 꼭 껴안아 주셨던 그 느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은 어떤 주술처럼 내게 힘을 실어 준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몸이 아플 때 여행을 할 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면 힘이 난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그것은 가슴 벅차도록 충만한 어머니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머니란 단어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고 한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헌신한 어머니의 희생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보다 잘사는 세상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용기가 난다. 힘이 난다. 산 같은 재산을 통장에 넣어둔 것처럼 든든하다.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는 내 무릎과 팔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 주셨다. 상처를 바라보시는 눈빛이 따스했다. 그 눈 속에 작은 내가 들어 있었다.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그 아가페적인 사랑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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