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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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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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영희 수필가
이 영 희 <수필가·충북교육과학연구원 총무과장>

우스갯소리로 전직 대통령의 애창곡이 무어냐고 하면 '아! 옛날이여' 라고 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는데, 지난 일요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법한 동문들이 옛날로 돌아가 한마음으로 체육대회를 연 날이었다. 소도시 학교이다 보니 청주에 거주하는 그 당시의 3개 고등학교 동문들이 사이좋게 모여서 같이 하게 된 지도 벌써 4회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참석을 못했었는데 '대지와 함께 호흡하며 그동안 마음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나'를 한번 소리쳐 보면 좋겠다.'는 동문회장님의 초청에 마음이 동하여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달려 갔다.

처음에는 학교별로 쳐진 세 개의 천막을 찾아가기가 좀 쑥스러웠으나 영원한 노스탤지어인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정감이 넘친다. 좁은 나라에서 무슨 학연지연이냐고 하다가도 이렇게 같이 모이면 그냥 좋으니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여고시절로 돌아간 대선배님들이 화통하게 솔선수범을 하고 평소에 근엄하게만 보이던 저명인사들이 더 낮은 자세로 부드럽게 뒤치다꺼리를 해서 우리를 감동시킨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나도 그 사람의 덕을 가지고 있나 생각해 보라."고 세르반테스는 말했는데 선배님들이 그런 분들이었다.

편을 나누기 쉽게 흥덕구 상당구로 나누어 시합을 하는데 피구를 할 때 "영희 죽어라." 하면서 공격을 하는데도 죽으라는 소리가 왜 그리도 정겹게 들리는지, 10대로 돌아간 듯 신바람이 나서 상대방을 4명이나 아웃시키고 흥덕구가 이기는 데 일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인 삼각 시합은 남녀를 한 조로 묶어서 뛰고 전환점에서 마주보며 몸으로 풍선을 터트린 후 돌아오는 것인데, 순진하게 규칙대로 하다 보니 풍선이 터지지 않아서 뒤처지고 말았다. 이 나이에도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소녀 같은 감정이 남아 있는지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돗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며 먹는 점심은 어렸을 적 못자리하는 논둑에서 얻어먹던 장떡과 막걸리가 있어선지, 모든 것이 고향의 맛을 그대로 배송해온 것같이 맛깔스럽다. 식사 후에 후배는 남자동창을 골리느라 없는 커피를 주문하고 능력을 본다고 하는데 어느새 모두에게 커피를 제공하는 수완을 발휘해서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신뢰를 주었다. 축구시합을 할때는 박지성같이 공격을 잘하는 선수한테도 응원이 없자, 대선배님께서 삼삼칠박수를 유도하며 흥을 돋우어 그 선배님 젊음의 비결이 열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누군가가 농담으로 동창회에 나오는 동문들이 '나 이만큼 성공했소.' 하는 과시형과 '나 좀 도와주소.' 하는 읍소형이 있다고 해서, 서로 어느 쪽에 속하냐고 묻다가 편 가르지 말고 순수하게 옛날로 돌아가자고 이내 한마음이 됐다.

중간 중간에 하는 경품추첨에 당첨된 동문들은 환호를 질렀지만 막상 경품을 열어보곤 "내 이럴 줄 알았지"하고 경품 초코파이를 돌리며 뽑히지 않은 동문들을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줄다리기 시합이 있었다. 가물어서 먼지가 뽀얗게 이는데도 투우사처럼 있는 힘을 다해 잡아 당겼다. 응원 덕분인지 질 것 같았던 우리 팀의 승리로 끝나 아이같이 만세를 부르다 보니, 장갑과 신발이 황색가루로 도포를 한 것 같은데 심신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빠르게 웃음 속을 달려와 평년보다 높다는 고온과 10대같은 열정을 식혀주고, 하늘도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지 이날따라 유난히 더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다.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고 여린 잎들이 연두색 새순을 뾰족이 내미는 아름다운 교정에서, 꽃같이 한마음으로 뛴 이날의 체육대회는 노스탤지어를 채워주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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