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일제고사
학교폭력 일제고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17 2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교육 칼럼
박 을 석 <전교조 충북지부 초등위원장>

10년만에 부활된 일제고사가 치러졌다. 300만에 가까운 학생들이 꼼짝없이 시험지 앞으로 불려와 끙끙대며 문제를 풀어야 했다. 예산이 160억 정도 소요됐다 한다. 이 일제고사의 이름은 국가수준 초3진단평가 및 초6, 중3, 고1 학업성취도평가다.

나도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다 보니 시험감독과 진행으로 이틀 동안 몸살을 앓았다. 난생 처음 겪는 시험 앞에서 아이들 역시 긴장했다. 선생님들이 시험 거부할까 중징계 엄포를 놓았던 차에 이번엔 체험학습이라는 형태의 시험거부가 있을까 교육청 당국은 응시자 파악에 분주했다.

아이들이 하릴없이 문제와 씨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건 폭력적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국가적 폭력 행위에 가담한 현장의 책임자였다. 왜 나는 이번 일제고사에서 폭력을 느꼈던 것일까. 먼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똑같은 문제지를 풀어야 하는 등의 통제 조건에 갇힌 아이들의 상황을 들 수 있다. 학력을 신장시킨다는 그럴싸한 시험 시행의 목적이야 있다.

그러나 모든 학력을 시험지로만 측정할 수 있고 똑같은 문제를 풀어야만 학력이 길러진단 말인가.

올림픽에서 장미란이나 박태환 같은 선수를 100미터 한 종목만으로 실력 측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둘째 시험 시간의 폭력성이다. 교육과정 고시라는 법령에서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40분이다. 그렇게 6년을 길들여져 온 아이들에게 준비시간을 포함한 70분이라는 갇힌 시간은 몸이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다.

첫째날 1교시는 준비시간 포함 90분이나 된다. 이는 보통 수업시간의 2배를 넘기는 시간이다.

셋째 풀어야 하는 문제량의 폭력성이다. 국어시험의 경우 전체 40문항(선다형 30, 수행형 10)에 문제지가 10쪽이나 된다.

사회는 43문항이다. 여러 가지 계산을 요하는 수학도 무려 36문항이며 문제지가 제일 간단한 영어조차도 5쪽이나 된다. 평소 많아야 4쪽 25문항을 넘지 않는 시험을 경험한 초등학생에게 이러한 문제량의 과다는 엄청난 위압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일제고사의 결과에 의해 자신의 등급이 매겨진다는 점이다.

우수, 보통, 기초도달, 기초미달이라는 네 등급으로 자신의 학력이 매겨지고 집으로 통보된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는 폭력이나 진배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푸줏간의 고기도 아닌데 꼭 등급을 매겨야 좋은 것일까. "그 성적표, 집으로 안 보내면 안되나요"라는 호소는 안타까운 절규로 들렸다.

주먹을 휘두르고 무기로 사람을 상해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사람을 시험장에 가두고 시험지로 재단하는 일제고사야 말로 폭력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올려 놓고 두려움을 가르치는 것이 폭력 아니고 무엇일까. 이것이 학교 제도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획일적인 평가로 창의력을 기르도록 설계된 교육과정을 파괴한다거나 시험을 자주 치르게 함으로써 사교육비를 증가시킨다거나 하는 등등의 문제는 일제고사가 야기하는 문제들 중에서 주변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짓밟는다는 점이다.

학력이니 경쟁이니 부르짖으면서 정작 호주머니의 돈이나 불리고 아이들을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목소리만 드높은 나라다.

눈물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아야 한다. 가여운 아이들의 신음을 들어야 한다. 일제고사의 폭력은 중단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