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특정정권의 것이 아니다
교과서는 특정정권의 것이 아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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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박 을 석 <전교조 충북지부 초등위원장>

교과서 문제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때문이 아니다. 국내 문제다. 국내 교과서, 특히 중등 검인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자못 뜨겁다. 기실 교과서 논란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그 대부분은 교과서의 특정 부분이 잘못됐다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대부분은 이러저러한 단체나 개인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요즘 진행되는 교과서 논란은 전면적 개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나 권력기관인 정부 부처가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것과 크게 다르다. 국방부는 과거 독재자나 군사정권에 대한 평가서술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통일부는 북한 관련 내용 및 그 대척적 지점에 있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한 기술을 고쳐달라고 했다. 심지어 초·중등교육에 대한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시·도교육감들은 이념적 판단에서 특정교과서의 채택을 막겠다고 팔짱 걷고 나서고 있다.

교과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듯 국가권력기관들이 나서는 것일까

교과서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엄선한 지식, 권위 있는 지식, 표준화된 지식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치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교과서를 장악하면 다음 세대에게 특정한 지식과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고, 특정한 형태의 인간을 길러 낼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교과서가 지식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교과서가 진리나 지고지선한 가치관의 표상일 수도 없는 것이 현대사회이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인격형성기에 있는 청소년기의 십 수 년을 특정한 교과서로 배운다는 것은 자못 영향이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교과서가 실로 이러한 것일진대 교과서에 담기는 내용이나 가치관을 단지 한 시기의 권력기관이 농단할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특정 이념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권이 출현할 때마다 교과서가 뒤바뀐다면 이는 청소년들의 인격형성에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민영화니 자율화니 구두선처럼 외치는 정부가 교과서를 원하는 입맛으로 고치기 위해 권력기관이 나서도록 하는 것은 볼 성 사납다. 역사 교과서라면 역사학계, 경제 교과서라면 경제학계 등 관련학계와 교육전문가들에게 맡겨서 지식과 가치를 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 채택의 문제도 시도교육감들이 나설 것이 아니라 현정부의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법대로 학교운영위의 심의를 거쳐 결정되도록 할 일이다.

전교조는 일찍이 교과서 문제 등을 포함한 제반 교육 문제를 다루고 결정할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주장해왔다. 특정 정권이나 지배 집단 등에 의해 교육이 휘둘리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 집단의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고 조정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진로를 똑바로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건설적 제안이 검토되고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정권과 특정 이데올로기 집단에 의해 진행되는 작금의 교과서 논란이 올바른 교과서관을 정립하고 교육 전반을 희망차게 개혁해 나가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세상엔 손쉽게 이루어지는 희망은 많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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