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쿨러닝' 봅슬레이 스타 김정수 역도선수였다
'한국판 쿨러닝' 봅슬레이 스타 김정수 역도선수였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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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 사상 첫 메달 획득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그 멤버 가운데 전북 정읍출신인 김정수 선수(27)가 과거 잘나가던 '역도 꿈나무' 선수였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김정수 선수는 지난 14일 미국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2차대회 4인승 경기에 출전해 감독겸 선수인 강광배씨와 이진희, 조인호와 함께 호흡을 맞춰 '한국판 쿨러닝' 신화를 일궈냈다.

김 선수가 고향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성장기때까지 봅슬레이와 거리가 멀었고, 고교 시절까지 역도 선수로만 기억돼 왔기 때문이다.

김 선수가 역도에서 남긴 성적도 나름대로 자랑거리다.

고향인 정읍 칠보면 시산리 시기마을 집에는 1999년에 전국대회 우승과 전국체전 등 각종 크고 작은 대회에서 따낸 수십개의 메달이 방을 장식하고 있어 전도유망한 '역도 꿈나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실력을 갈고 닦던 역도와는 완전히 다른 종목인 봅슬레이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선수의 고향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버지 김호남씨(49)는 "정수가 속한 65~70㎏급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어서 항상 부담이었다"고 한다.

김 선수는 이 같은 두터운 경쟁자들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훈련에 더 열을 내게 됐고 그 과정에서 허리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소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운동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 꿈이 운동선수였는데 체격이 좋아 시골에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역도를 택했다.

이후 중학교 때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역도 특기자로 전북체고에 진학해 역도선수로서 대망을 품게 됐다.

전주대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김 선수의 목표는 그대로 역도선수였다.

하지만 허리통증과 전국대회의 높은 벽으로 쓴맛을 보면서 어려움이 겹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로 향해야만 했다.

군 제대 이후 대학에 복학해서 현재 감독겸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바로 강광배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김 선수의 길이 바뀌게 됐다.

강 감독은 역도선수로서의 길을 계속 가야할지 포기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던 김 선수에게 봅슬레이로 종목 전환을 권유했고, 거듭된 설득에 결국 김 선수의 마음이 움직였다.

아버지 김씨는 강 감독 권유로 막연한 썰매질을 시작한 김 선수가 봅슬레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4년께로 기억된다고 했다.

봅슬레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줄로만 알았던 봅슬레이로 상을 타온 것은 새출발 1년이 되기도 전인 2005년 10월9일. 그는 강원도에서 개최된 한 대회에서 따낸 금메달과 함께 우승컵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실력을 인정받았던지 졸업하기 2년전부터 김 선수는 강원도 대표로 활약하고 이후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하면서 얼굴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그것도 잠시. 새해벽두부터 낭보가 전해져와 동네가 떠들썩하다.

봅슬레이를 시작한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가 세계 스타가 돼 돌아오게 된 것이다.

김 선수는 여느 운동선수와 다르지 않게 풍족한 가정형편을 누리지 못했다.

고향인 칠보면 시산리 시기마을에는 아버지 김호남씨(49)와 어머니 김영이씨(47)씨, 그리고 동생 형수씨(26)만이 단촐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아버지 김씨는 동네에서 타이어 수리를 하고 있고 어머니는 면사무소에서 일용직으로, 동생은 공단 근로자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 김씨는 "정수는 평소 차분한 편이고 한번 시작한 일은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며 "다음달 초에 있을 세계대회에서는 더 좋은 성적으로 낭보가 전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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