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과 나비를 붙들지 않으려 함이다
벌과 나비를 붙들지 않으려 함이다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4.05.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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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적벽부'로 유명한 중국 북송 문인 소동파(蘇東坡)는 고기반찬 없이는 살아도 대나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시를 빌려 단언했다.

혹자는 고기 안 먹고 사는 게 뭐 대수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그가 누군가 중국 항저우 대표요리인 동파육(東坡肉)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먹은 이도 그고 그래서 요리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동파는 고기에 빠져 살았다면 대나무에는 미쳐 살았다. 그래서 그런 그를 사람들은 치죽(痴竹)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치는 어리석을 치(痴)다. 대나무에 미쳐도 한참 미쳤다는 말인데 미친 만큼 대나무도 잘 쳤다. 묵객(墨客)들은 난초나 대나무를 그리는 것을 `친다'라고 표현한다. 소동파는 죽(竹)에 미친 만큼 죽(竹)치고 살았다.

귀동냥한 이야기다. 동파가 죽(竹)에 미쳐 죽치고 사니 죽 잘 친다는 소문이 세간에 퍼졌다. 그의 그림 한 장 받아 보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런 이들 중 누군가 찾아왔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먹(墨)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던 주묵(朱墨)을 붓에 찍어들어 죽을 쳤는데 그걸 보고 있던 사람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세상에 붉은 대나무가 어디 있소?”

“그럼 먹빛의 대나무는 이 세상에 어디 있소?” 동파의 답이다.

성죽어흉중(成竹於胸中)

네 글자로는 성죽흉중(成竹胸中)이다. `대나무를 그릴 때는 먼저 네 마음속에 대나무가 있어야한다'는 뜻이고 `어떤 일을 시도할 때에는 미리 마음에 계획을 가져야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묵객 사이에서 오가는 대나무 그리는 법인 화죽이론(畵竹理論)의 핵심인데 이것을 처음 설한 이가 소동파다. 그러니 알고 친 것이다.

대나무는 나무(木)가 아니고 풀(艸)이다. 식물학적으로 나무로 분류되려면 첫째 단단한 부분인 목질부가 있어야 되고 둘째는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해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하는데 두 번째 조건 불충족으로 식물학적으로는 풀이 된다. 나무도 아닌 것을 나무라 부르며 그것도 모자라 이름 앞에 대자까지 붙여주고 사군자 중 하나로 꼽아준 연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식물학적으로 나무가 되지 못한 이유에서 찾았다. 대나무는 부피 생장을 못하니 나이테가 없고 그래서 속이 텅 비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을 닮았고 유가적 사상에서의 비움을 닮았다.

부자손자필유익지 (夫自損者必有益之) 무릇 덜어내는 자는 필히 더하게 될 것이고

자익자필유결지 (自益者必有決之) 스스로 더하려는 자는 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오이시탄야 (吾是以歎也) 이 때문에 감탄 한 것 이다

한날 공자(孔子)는 주역(周易)의 손(損)괘와 익(益)괘를 읽다가 작은 탄식을 흘린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 본 제자 자하의 어찌 탄식하시냐는 물음에 대한 공자왈이다.

불가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이 있다. 진공(眞空)은 참다운 공을 말하고 묘유(妙有)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텅 빈 충만'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도 비움을 강조했으니 비움은 유불선(儒佛仙) 공통의 진리이자 가르침이다. 이에 더해 더불어 뿌리줄기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대숲을 이루는 모습에서는 상생(相生)을 배우고 마디라는 뚜렷한 생장점(生長點)에서는 더 큰 성장을 위한 준비와 기다림의 미학을 배운다.

죽실(竹實)만 먹고 사는 게 봉황이라니 대나무도 꽃 피기는 필 것이다. 피기는 핀단다. 수십 년에 한번 그것도 필까 말까지만. 일찍이 대나무가 능히 꽃피우지 않은 연유를 청나라 서화가 정섭이 대나무를 대신해 시로 전했다.

아자불개화 (我自不開花) 내가 기꺼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면료봉여접 (免蜂與蝶) 벌과 나비를 붙들지 않으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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