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하러 떠나는 여행
확인하러 떠나는 여행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2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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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문학 칼럼
박 홍 규 <교사>

여행은 즐겁다. 흔히 그렇다. 기대되지 않는 여행이 어디 있으랴. 직접 가지 못한다면 책으로라도 가고 싶은 것이 여행이다. 한편, 모든 여행은 원점회귀이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도 있기는 하되, 그것은 죽음이거나 일상의 전면적인 거부 또는 방향전환이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에 순응할지라도, 겉모습은 그러할지라도 속마저 같을 수는 없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떠난, 흔한 즐거움이 아닌 무거움을 들고 떠난 여행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번 여행이 그러하다.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 지은이를 따라서 '투발루에서 알래스카까지' 다녀왔다.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을 갔다 온 셈이다. '지구 온난화'는 현실이다. 비껴가지 않는 태풍이다. 아니 태풍이라는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지나가면 끝나는 1회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기후변화를 느끼고 있다. 올해와 같이 잦은, 심하다 여겨질 정도로 잦은 비와 더위는 달라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그러나 2000년부터 3년간 지구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보고, 듣고, 확인한 다음 지은이가 전하는, 그것도 몇 년 전의 알래스카와 투발루, 몽골, 페루의 상황은 충격 그 자체이다. 감수성이 예민한지 어떤지는 상관없다.

알래스카 2001년. 수천년 만에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다. 지진을 만난 듯 길이 갈라지고, 집은 땅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호수들도 사라진다. 그곳에 터 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철에 올라오던 연어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자 삶의 방식과 문화도 잃어가고 있다.

투발루 2002년. 해수면이 올라가고 있다. 만조 때면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 오른 마당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주민들의 사진과 잔해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작은 섬의 흔적을 담은 사진은 더 이상의 상상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그들, 산업화와 거리가 먼 투발루 사람들은 온실가스 방출에 대해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중국 네이멍구(내몽고)와 간쑤(감숙성) 2002년. 계속되는 가뭄과 모래폭풍으로 밀밭은 모래밭으로 변하고, 나무를 심어도 가뭄 때문에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가 봄에 겪는 황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숨 쉬기조차 어려운 흙먼지 폭풍은 일상이 되어 있다.

페루 안데스 산맥 하카밤바 골짜기 2002년. 지은이의 아버지가 1980년대에 찍은 사진에는 골짜기가 빙하로 가득하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지은이가 찍은 사진에 빙하는 없다. 20년 사이 통째로 녹아 사라져 버렸다. 안데스 산맥을 비롯한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빙하 소멸은 투발루의 비극과 연결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자극으로 직접과 닿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심각한 일일지라도 관심 영역에서 쉽사리 제외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도 하다. 먹고 사는 문제도 바쁜데 용량을 초과하면서까지 남의 나라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지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모습은

기후변화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IPCC 보고서는 허위가 아니다. 현실이다. 현실임에도 지구온난화보다 우리 사회적 삶의 조건은 더 빨리 변하고 있고, 어느 새 '속도'는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으며, 속도에 적응하여 따라잡는 일이 성공의 열쇠이자 능력의 상징이 되어버려 거기에 우리들은 적응하기 바쁘다. 정신없이 바쁘다. 이 속도에 비추어 기후변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가볍다. 기준이 절대 같을 수 없으나, 우리는 꼼꼼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자연의 시간으로는 너무나 빠르게 물은 차 오른다. 발목을 덮고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곧 허리도 잠기게 될 것이다.

책을 덮어 여행을 끝내는 순간, 다시 일상이다. 그러나 속은 복잡하다. 지은이가 짚어 낸 것처럼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중립이나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조건이라면 우리는 어떻게든 적응한다. 사람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이 신음하며 만들어내는 변화에 과연 우리는 별 무리 없이 적응할 것인가. 그럴 수 있을까.

<읽은 책: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마크 라이너스, 2006.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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