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를 팔아먹은 충북
단재를 팔아먹은 충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2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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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단재문화예술제전 추진위원장>

처참했다. '단재언론상이, 귀 단체들간의 법정 소송까지 벌이는 추악한 이면의 실상을 알게 됐고, 애당초 그런 상의 수상을 고사했던 입장에서, 그 소송의 향방과 귀결의 여하를 불문하고 그 상의 수상을 거절한다는 의사를 통고합니다'라는 이 말은 2006년 제11회 단재문화예술제전의 단재언론상 제1회 수상자로 결정된 리영희 선생께서 수상을 거부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그 이후 전국의 많은 분들께서 단재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와 질책을 표시했다. 이 우려와 질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단재를 팔아먹는 충북 사람들은 깊이 반성하라는 것이었다. 작지 않은 파문이 일었고, 치욕과 수치심이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자아냈다.

이 일로 인하여 지난 1996년 처음 단재문화예술제전을 만들고 희생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온 박정규 교수와 함께 일한 많은 분들이 큰 상처를 받았다. 특히 박정규 교수는 결곡한 성품으로 진실하게 일을 해온 터여서 그 상처가 더욱 컸을 것이다. 좋은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그만 비꾸러져서 처음의 숭고한 뜻에 흠결이 생겼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당연히 박정규 교수의 좋은 뜻과 공로는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

한편,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 분들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단재의 자부(子婦)인 이덕남 여사를 비롯한 고령 신씨 집안에서 단재를 상표로 등록하고 그 이름을 사용하지 말도록 소송을 제기하긴 했지만, 법정에서 기각으로 끝난 일도 있다. 여하간 2006년, 충북은 단재 신채호로 인하여 소란했었으니, 지하의 선생께서 진노(震怒)하실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런 난맥의 난제를 풀어보고자, 2007년 9월 시민민중단체를 중심으로 새로 구성된 단재문화예술제전 집행부는 지난 10월 14일 군포의 리영희 선생댁을 방문하여 그 전말과 전후 경과를 말씀드린 바 있다. 이미 유초하 교수가 정황을 설명했지만, 선생은 썩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집행부를 맞이했던 것이어서 집행부 또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집행부는 지난해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하여 사죄(謝罪)를 했다. 선생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리영희가 누구인가. 서슬 퍼런 유신체제 하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한 분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던 선생의 항거는 비타협의 목숨을 건 진심이었기 때문에 빛나는 것이고, 선비의 지조를 지킨 것이기에 귀중한 것이다. 몇 번의 옥살이에도 흔들림이 없던 선생이기에 후학들이 존경하는 것이고, 고초를 자랑하지 않기에 후세들이 경외(敬畏)하는 것이다. 말썽 많은 NLL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해석하여 남북문제의 전환점을 만든 분도 선생이다. 선생에 대해서는 '대쪽'이라는 한마디 어휘가 적합하다.

과연 군포 수리산 기슭의 리영희 선생은 대쪽같았다. 이 시대에 그런 선비정신을 가진 선생이 있다는 것만 해도 위안이 되는 일이다. 고집스런 눈빛,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음성 등 결코 이 시대에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위인이었다. 1929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에 몸을 담았고,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환시대의 논리' 등으로 민주화의 이론을 제공한 경력도 그렇지만, 선비만이 가질 수 있는 강직한 심성과 빈틈없는 몸가짐은 후세들의 찬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오죽하면 한국사회에서 이름값이 작지 않은 유초하 교수도 리영희 선생 앞에서 어려워했을까

그날 리영희 선생은 나직한 음성으로 단재의 정신을 이야기했고, 부디 좋은 뜻이 좋은 결과를 내기를 기원했으며, 마지막으로 지난해 수상 문제는 다 잊어버리겠다고 했다. 난제가 풀리고 명분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단재언론상'은 일단 이렇게 정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는 수치심은 지울 수가 없다.

엊그제 김재욱 청원군수는 '단재 관련 단체들이 왜 자꾸 싸우느냐'라고 냉소적인 질타(叱咤)를 했다. 굴욕감을 안기는 이 말에 대해서 역시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단재문화예술제전은 단재 동상건립과 함께 충북정신사의 한 축이기에 소홀히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2007년 올해는 신뢰와 명분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21세기의 또 다른 문제적 인물 도올 김용옥의 단재 해석이 흥미롭겠거니와 김용옥은 훗날 리영희를 어떻게 평가할까도 기대가 된다.

부디 단재가 형형하게 살아서 우리가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고, 우리가 당했던 치욕을 우리의 정신으로 갚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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