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남자
심심한 남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04 2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목련
김 혜 식수필가

밤새 내린 폭우로 아파트 앞 여울물 소리가 제법 소란스럽다. 전라도 광주에선 아파트를 지을 때 필히 아파트 내에 여울물을 만들도록 법을 정했단다. 그만큼 회색빛 숲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한텐 여물물이 안겨주는 서정성은 매우 높은 듯하다.

내가 이곳 아파트에 이사한 후 까닭 없이 마음이 울적할 땐 마당가에 만들어진 여울물을 바라보곤 한다. 졸졸 소리 내어 흐르는 그 여울물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그곳에 종이배라도 만들어 띄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여 나는 며칠 전부터 종이배를 만들어 그곳에 띄웠다. 여울물을 따라 둥실둥실 떠가는 종이배를 보는 순간 마치 내가 동심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 종이배가 나의 온갖 시름을 모두 싣고 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해질녘, 집 앞 여울물에 종이배를 띄우느라 여념 없는 날 발견한 남편은 내게 어린애처럼 종이배나 띄우느냐고 나무랬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물결 따라 둥실둥실 떠가는 종이배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남편이 어찌알랴. 동심으로 돌아간 나의 이 기쁨을 말이다. 아니 행복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나는 요즘 여울물에 종이배 띄우는 시간이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

하긴 남자들이야 여자들이 느끼는 이 소소한 행복을 감지나 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불현듯 남자들은 어느 때 행복할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남자들은 오로지 사회적 명예를 얻을 때,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때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홀아비가 되거나 기러기 아빠의 처지에 놓이게 되면 심리적, 육체적으로 크게 위축된다. 결혼의 여부와 관계없이 혼자 사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외양이 꾀죄죄하고 생기가 없다. 반면 여자들은 과부, 독신녀 불문하고 얼마든지 혼자서도 잘 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들은 일상에서 오는 가슴 설레는 기대감, 사랑에 대한 느낌, 가벼운 흥분 등에 취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직 남자는 우직하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탓일까.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군대 이야기,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등 뿐이다.

여자는 어디 그런가. 모이기만 하면 접시가 수없이 깨진다. 시어머니 흉, 남편, 흉, 이웃집 흉까지 가슴에 앙금을 수다로 다 거둬낸다. 또한 사소한 것에도 감동 잘하고 눈물 흘리며 기뻐한다. 다소 호들갑스러울지 모르나 이렇듯 감정 표현에 익숙하다.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영국의 BBC 방송이 방영한 '행복의 공식'에선 첫째 행복은 건강과 관련된다고 분석했다. 그들의 조사 결과를 보면 행복한 그룹과 불행한 그룹의 수명 차이가 무려 9년이나 됐다. 가장 강력한 건강 위해인자인 흡연이 3∼6년 수명 단축을 하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결과 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건강해서 행복하다는 말보다는 어쩌면 행복해서 건강하다는 말이 맞는 말이 아닐까 한다. 돈의 영향은 그다지 크게 행복지수에 작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일부 남자들은 자신의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고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탐닉이 아니다. 탐닉을 위한 쾌락은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마치 카드 패를 조일 때 느끼는 아슬아슬한 기분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이 교감 신경에서 작용하는 긴장형 쾌락이이요. 하품이 나고 졸음이 스르르 쏟아지는 현상이 부교감 신경형의 느긋한 쾌락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부교감형 쾌락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어린 날 시냇가에서 종이배를 띄워 본 사람은 잘 안다. 종이배는 빈 배여야지만 가라앉지 않고 물결 따라 잘 떠내려간다는 것을, 우리네 인생도 그와 흡사하다. 험한 인생바다에 가라앉지 않으려면 잔뜩 낀 마음의 때부터 벗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