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혁신센터 21개월
창조경제혁신센터 21개월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6.06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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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2년 전 취재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출신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 직원들을 몇 명 만난 적이 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수수한 복장을 갖춘 그들은 현지 창업보육센터에서 3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사용하며 기술 개발에 한창이었다. 개발 중인 아이템도 신선했다. 일종의 자동차 스캐닝 시스템이었는데 차를 타고 검색대를 통과하면 단 2~3분 만에 차량 내부의 부품별 이상 작동 여부를 판단해 결과를 출력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과잉 수리와 불필요한 부품 교체 등 차량 정비업체들의 고질적인 바가지 상혼을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히트 상품’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또 다른 한국 출신 스타트업에선 의료 진단용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었다. 원격 진료 과정에서의 정밀도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미국 현지에서도 관심이 높은 아이템이었었다. 그 회사 직원들을 만나 왜 한국을 떠나 미국까지 와서 고생하느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씁쓸했다.

“한국에선 끝까지 갈 수가 없어요.” “초기에 바로 잡혀 먹힐 겁니다.”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신생 벤처기업을 키우려 하지 않고 자사에 흡수해 버리려 하는 한국 대기업들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그들은 이런 말도 했다. “한국에선 절대 구글같은 회사가 나오기 어렵다. 거래 관계인 신생 벤처기업을 파트너가 아닌 종속물로 생각하는 대기업들의 마인드 때문이다.”

실제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는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미국 기업들의 동지애적 시각 덕분에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자사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견하면 파트너십을 갖고 꾸준히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한다. 이런 생태계에서 페이스북이나 구글, 페이팔, 스카이프 같은 세계적 ICT 선도 기업이 태어났다.

‘중소기업에선 제2의 삼성이 될 수 없겠지요.’ 며칠전 한 언론사의 경제진단 르포 기사의 제목이다.

정부의 친 대기업 정책이 중소기업을 영원한 중소기업으로 고착화하고 있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이 기사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지난달 ‘대한민국 균형 성장에 대한 남녀 국민 의견’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한국의 가장 큰 경제·사회적 문제를 묻는 말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임금 및 기술 격차가 57.6%로 1위, ‘금융·인력 자원의 대기업 편중 심화가 40.1%로 2위를 차지했다면서 정부의 친 재벌정책이 이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정책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비해 -5.4년, 일본엔 -3.8년. 반도체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격차다. 우주항공 분야는 더 한심하다. 그동안 우리는 반도체로만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골목상권에서 빵을 팔고, 수입차 판매권을 독점해 중간 유통 수수료나 챙기고 있다.

정부가 2014년 9월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 스타트업 육성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국내 재벌 대기업이 모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성과도 속속 가시화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이곳에서 싹을 틔우게 될 스타트업들이다. 대기업이 포식자로 변하지 않도록 하는 정부의 감시·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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