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풍경
취업풍경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6.28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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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 <부장>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청주 시내 한 학교 운동장에는 머리가 희끗한 남녀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딱히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햇살을 피해 삼삼오오 앉아 있는 많은 어르신의 모습이 이상해 발길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학교 정문에는 시험장을 알리는 푯말이 있었다. 지방직 9급 공무원시험장. 그러니까 공무원 시험이 치러지는 고사장이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자녀를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사랑이 남다른 대한민국 부모라지만 대학을 졸업한 다 큰 자식을 위해 시험장 앞에서 또다시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착잡함과 난감함이 밀려왔다. 

대학 수시 때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이젠 공무원 취직시험장에서도 만나게 되다니. 하나같이 운동장 너머 교실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학수고대(鶴首苦待)란 말의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수시 풍경보다 더 짠한 취업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날 전국적으로 20여만명이 280여곳에서 지방직 9급 공무원시험에 응시했다고 한다. 40여만명이 넘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같았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280여곳 학교 운동장마다 학수고대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으리라 본다. 

헬리콥터맘이니 캥거루족이니 현 세태 풍자가 만연하지만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게 문제이다.

공무원시험 고사장 앞에서 본 풍경에 부모 숙제가 끝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대한민국에서 누가 애 낳고 키우겠나 싶은 생각도 절로 들었다. 어렵게 아이를 낳아도 경쟁의 교육구조 속에 어쩔 수 없이 밀어넣어야 하고 그러고도 취업이란 관문 앞에서 또 한번 절망하는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부모라는 이름도 굴레가 되어가고 있는 듯 싶다.

부모의 책무보다 청년들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더 심각하다. 청년 실업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아니 전 세계국가가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지만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취업 양상을 보면 심히 우려스럽다.

지나치게 공무원 편향 지원이 쏠림현상으로 나타나고 공무원시험이 고시로 지칭되면서 취업재수 3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시험에 붙으면 효자 효녀가 되고 1등 신랑감 신붓감으로 분류되면서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사회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꿈을 펼쳐야 할 청춘들이 1년을 준비해 하루로 경쟁하는 이상한 직업군에 목을 매고 그도 모자라 몇 년의 취업재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청춘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패기와 도전은 줄어들고 현실에 안착하기 위해 취직을 위한 공부에 열정을 쏟아붓는다. 

이처럼 1년에 한번 채용 공고하는 공무원시험에 많은 청춘이 올인하면서 기현상은 어느새 일반화되어 사회도 우리 자신도 무감각해지고 있다. 매년 20~30만명의 응시자들이 공무원 시험에 쏟아붓는 에너지를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의 구조적 건강성은 허약해질 수밖에 없는 모순을 낳는 것이다. 

불안한 시대가 계속될수록 안정적이고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군을 갖는 것이 최고의 일자리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한 미래만 보고 직업을 선택해서도 안 될 것이고 안전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유보하고 살아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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