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백수오
가짜 백수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05.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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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요즘 주식시장에서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보유 자산이 채 한 달만에 10분의 1토막이 난 투자자들. 바로 코스닥 상장회사인 내츄럴엔도텍의 주식을 보유 중인 사람들이다.
이 주식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것도 끝없이 아래로만 추락하는. 지난 4월 21일 8만6000원을 찍었던 주가는 불과 18거래일만인 어제 8610원으로 90%나 추락했다. 이 회사가 만든 건강식품이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시가 총액은 1조7000억원대에서 18일 167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1조5000억원이 허공에 날아갔다.
한때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순위 8, 9위를 달렸던 바이오업계의 신예 대장주. 지금은 무려 270계단이나 추락한 278위로 밀리면서 추가 하락을 걱정해야할 처지가 돼버렸다.
이 회사 때문에 쪽박을 찬 개인 주주는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의 소액 주주는 모두 9433명으로 주식의 55% 1061만주를 보유 중이다. 인터넷 증권 정보 게시판엔 주식 보유자들의 한숨과 푸념만 쏟아지고 있다. 우량주라며 매입을 권유한 증권사 직원의 얘기만 믿고 5000만원을 투자했다가 자산이 500만원으로 쪼그라든 주부, 방송 추천주라서 전세 얻을 돈을 잠깐 굴리려다 1억원을 날렸다는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숱한 안타까운 사연들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회사는 이른바 가짜 백수오 사건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달 내츄럴엔도텍이 만들어 판매한 백수오 건강 기능식품과 원료에 백수오와 전혀 성분이 다른 이엽우피소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식약처도 곧바로 정밀 분석을 통해 이엽우피소가 함유돼 있음을 재확인했다. 이엽우피소는 외관은 백수오와 같지만 독성 등 유해성이 의심되는 전혀 다른 품종의 식물이다. 안전성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식시장에서 투매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태가 남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백수오의 주산지가 충북 제천 일대라는 점이다. 충북 북부지역에는 제천을 중심으로 100여 농가가 백수오를 재배하고 있으며 그중 80% 정도가 내츄럴엔도텍과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농가 매출액도 연간 50억원대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이들 농가는 1년 농사를 사실상 망쳐버렸다. 부도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회사 측이 계약 물량을 소화시켜 줄 일이 만무하기 때문이다. 재배 현장에서 쏟아지는 농민들의 눈물과 한숨이 생생하다.
 안타까운 건 이번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2013년 말 두 차례에 걸쳐 식약처에 시중에 ‘백수오를 사용 원료로 표시하고 이엽우피소를 사용하는 행위를 단속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5개월여를 끌다가 허위 표시 2건, 과대광고 3건 등을 적발해 행정 조치하는 선에서 조사를 끝냈다. 이때는 백수오시장이 성장기에 진입 중인 시점이었다. 당시 전수조사를 해서 철저히 단속하고 건강식품 원료 사용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있다는 옛말, 새기고 또 새겨도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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