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축구처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정치가 축구처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06.18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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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운동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나라는 유엔(UN)회원국 193개국보다 많은 203개국이다. 전 세계 인구의 1/6이 직접 축구를 즐기고, 지구촌 곳곳에 5천만 개의 축구장이 있을 정도로 대륙과 인종, 계급을 뛰어넘어 세계인이 열광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지구촌의 축제가 된다.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됐다. 러시아, 벨기에, 알제리와 함께 H조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는 18일 아침, 러시아와 첫 경기를 치렀다. 월드컵 직전에 열린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튀니지와 가나에 1:0과 4:0으로 모두 패하면서 실망을 안겨준 대표 팀이기에 강호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 대한 걱정이 앞섰었다. 그러나 결과는 감동이었다. 일주일전의 무기력했던 그 팀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FIFA랭킹이 훨씬 높은 러시아와 싸우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투지와 팀워크로 러시아를 몰아붙여 선취 골을 넣기도 했다. 결과는 1:1 무승부였지만 9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가슴을 조였던 명승부였기에 설혹 졌다고 하더라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경기였다.

이렇게 축구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몰입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도전정신일 것이다. 어려움에 맞서려는 도전의식은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다. FIFA랭킹이 뒤져도, 개인기량이 떨어져도 예측할 수 없는 승부에 끊임없이 도전하여 마침내는 ‘공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며 이변을 연출하는 순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공정한 경쟁이다. 오늘날 우리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냐는 것이다. 정당한 룰보다는 편법이 횡행하고 실력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 평가받으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축구장에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단 하나의 룰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실력만 갖추면 언제든지 중용될 수 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룰과 실력이 다른 요인에 의해 폄훼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대리만족이다. ‘나를 대신해 그들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이다. 그리고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것이 스포츠의 세계다. 언젠가는 승리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러한 대리만족은 희망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서 열거한 축구가 주는 감동의 이유를 단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 도전정신은 없다. 도전이 있다면 선거나 당직에 출마하는 등 개인의 명예와 권력을 위한 도전일 뿐 정치개혁을 위하거나 지역구도의 본질을 바꾸거나, 정당을 뛰어넘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한 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바보 노무현’ 이후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공정한 경쟁도 없다. 한나라의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일반 국민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일들을 저질러놓고도 뻔뻔하게 그 자리에 나서려고 하는 것이다. 위장전입과 관피아의 대표적인 사례인 전관예우는 기본이고, 교육의 수장이 되겠다는 사람은 논문표절 의혹이 밝혀지고, 국무총리 후보자는 민족정신을 폄하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친일발언과 부적절한 처신들이 밝혀졌는데도 최고 권력자의 눈치나 보며 전전긍긍하는 정치권이나 당사자를 보면서 국민은 절망하게 된다. 이런 정치권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를 위해 대신해주고 있다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무망한 일이다.

6·4지방선거가 끝났다. 여야가 승리를 가늠하기가 힘들어 서로 벼르고 있다. 정부는 국무총리 교체를 비롯한 개각을 단행한다고 법석이고, 야당은 인사청문회로 맞대응할 태세다. 그러면서 7·30 보궐선거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기 위해 벌써부터 각오가 대단하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 전을 계기로 월드컵은 국민의 관심과 화두로 등장하며 열기를 더해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없이 벌어지는 현안들 속에 세월호 참사를 묻어서는 안 된다. 축구의 달콤함에 세월호의 아픔을 마취시켜서도 안 된다. 6·4지방선거 등으로 국민의 관심이 조금 멀어진 순간 밀양송전탑 반대 농성현장을 강제 철거하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도 그렇게 덮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안전한 나라, 복지국가를 물려 줄 수 있느냐하는 시금석이다. 세월호 참사 65일째 아침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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