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예산 누수부터 막아야
복지예산 누수부터 막아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10.07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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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이제 복지는 시대의 화두를 넘어 절체절명의 숙제가 됐다. 복지정책의 잔가지 중 하나에 불과한 노인기초연금 하나로 장관이 물러나고 정권의 지지율이 요동을 칠 정도가 됐다. 정부는 복지예산 조달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잖다.

그런데 복지예산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새나가는 누수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다 보니 정부가 ‘증세없는 재원 확보’라는 난망한 숙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줄줄 새는 복지예산을 틀어막을 방도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예산이 수혜자들의 복지에 제대로 기여하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누수를 막을 장치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는 복지예산 확충의 효과적인 방편이자 향후 확대될 복지정책의 효율을 위해서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다.

최근 일부 노인의료복지시설들이 정부가 지원한 운영비를 유용·횡령한 혐의로 도마에 올랐다.

국민권익위가 두달간 전국 200개 노인의료복지시설의 국가 지원 운영비 사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 여러 곳에서 대표가 운영비를 횡령하거나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한 시설 대표는 3년간 2억6000만원을 유흥비나 개인 빚을 갚는데 썼다. 이 돈으로 보살펴야 할 시설 노인들에게는 인근 학교에서 급식하고 남은 음식을 공짜로 얻어다가 제공했다고 한다.

또 다른 대표는 1억4000만원을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사업체 운영비로 사용했다. 2개의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부부는 2억여원을 채무 변제 등으로 유용했다가 적발됐다. 퇴직적립금을 종사자 개인 명의의 퇴직연금이 아니라 시설 대표나 지인 명의의 개인보장성 연금보험에 가입한 곳도 30%나 됐다.

감사원은 지난 2월에도 공금을 빼돌린 노인요양시설 대표를 무더기로 적발했지만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국민건강보험이 전국 4352개 노인의료복지시설에 지원하는 돈은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얼마나 많은 돈이 수혜자가 아닌 사업자의 호주머니로 새는지 미뤄 짐작할만 하다.

노인복지시설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며 정부 보조금 등을 빼돌려 수억원대 부동산을 사들인 부부가 구속됐다. 이들은 시설 장애인들에게 매달 지원되는 식비, 프로그램비, 야간돌봄비, 주거비 등 40만원을 장애인들 통장에서 인출해 착복하기도 했다.

부산의 한 장애인협회장은 장애인 근로작업장에 지원된 보조금 1200만원 중 790만원을 부회장의 급여 명목으로 빼돌려 개인용도와 사무실 운영비로 전용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장애인복지증진대회 비용으로 받은 보조금 4500만원 중 700여만원도 빼돌렸다. 서울 강남의 한 여행사 대표는 요양 보호사가 장애인이나 노인과 동행하는 여행사업을 추진하면서 받은 보조금 10억원을 카지노에 투자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처럼 감사나 사법기관에 의해 드러난 비리가 숱하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대로 세습해가며 쉽게 돈을 버는 알짜배기 사업체로 변신한 복지시설도 적지 않다. 허술한 관리·감독이 1차적 원인이다. 시설장 선정에서 도덕적 기준을 강화하고 친인척은 일절 운영에 개입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 사소한 비리라도 발견되면 시설을 폐쇄하거나 시설장을 퇴출하는 엄벌주의를 지향해 재발을 막는 것도 급하다. 복지재정을 좀먹는 허울 뿐인 복지시설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정부가 어렵게 짜낸 예산이 엉뚱한 주머니로 흘러나가는 악순환을 막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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