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산 같은 마음으로
새해엔 산 같은 마음으로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1.0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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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충청논단을 통해 인사드린 지 꼭 한해가 지났습니다.

다섯 손가락 이야기를 하면서 따뜻한 사회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지만 날카로운 가시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새해에도 따뜻한 이야기만 전하겠다는 약속은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가 약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맘 때면 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자주 듣는 성경의 말씀을 벗어나서 그리스 신화나 그 이전의 문명인 수메르 신화, 인디언들이나 마야 사람들의 이야기도 생각해 봅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도 생각해 봅니다.

그 중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통해서 전해진 흰쥐와 검은쥐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교를 통해 오래 전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는 코끼리를 사자로 바꿔 전했을 뿐 내용의 구조는 같습니다. 빈두설경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나서다가 들판에서 미쳐 날뛰는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놀라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다 옛 우물터의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물 아래에는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위에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둥둥 구르고 아래에는 독룡이 혀를 낼름대니 나그네는 유일한 생명줄인 등나무 넝쿨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때 흰쥐와 검은쥐가 나타나서 서로 번갈아 등나무 줄기를 갉기 시작했습니다. 멍하니 하늘을 쳐다 볼 뿐인데 그때 머리 위 나무가지에는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움직일 때마다 꿀이 떨어져 입에 들어왔습니다. 나그네는 꿀의 단맛에 취해 모든 위험을 잊고 도취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대지에는 불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워버렸습니다.

넓은 광야는 무명장야, 위험을 만난 사람은 인생, 코끼리는 무상, 옛 우물은 생사, 등나무 줄기는 생명줄, 흰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 독룡은 죽음, 벌은 헛된 생각, 꿀은 오욕, 불은 늙고 병드는 것을 말합니다.

한겨레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화해할 줄 모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한계에 부딪쳐 성장을 멈추고 빈부의 격차는 심해져만 갑니다. 젊은이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의욕을 잃었습니다. 청소년들은 문자의 감옥에 갇혀 있거나 게임에 중독되어 갑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떠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럼에도 당장 아파트 값이나 조그마한 계층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우리 자화상을 위험 앞에서 꿀에 도취해 있는 나그네를 통해 봅니다.

우리 현실을 바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노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습니다. 눈 속에 내 속을 내놓고 문정희 시인의 알몸노래란 시를 크게 읽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피만큼이나/ 내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 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 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필생의 사랑을 하고 말텐데...

보잘 것 없는 글임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고맙다고 격려해 주시는 독자님들, 그리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동의할 수 없는 글이라고 지적해 주셨던 분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글로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를 찾아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라도 내 놓고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또 한 편 읽고 싶은 이해인 수녀의 시가 있습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 산처럼 어질게 서로를 품어주고 용서하며/ 집집마다 거리마다/

사랑과 평화의 나무들을 무성하게 키우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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