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의 선언
한계의 선언
  • 김봉수 교사 <충북과학고>
  • 승인 2011.12.0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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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김봉수 교사 <충북과학고>

지구상의 한 종인 인간들은 해마다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통해 최고의 진·선·미를 뽑는다. 자연과학 연구자들도 이같이 복잡다단한 자연에서 일반화·추상화·이상화의 모델을 추출하고자 한다. 그 이면에는 한결같이 단순함의 극치를 지향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상화는 자연현상에 기여하는 본질적인 것만을 상정한 것들로 질점, 이상기체, 이상유체, 강체, 흑체, 카르노엔진 등과 같은 것들이 한 예이다. 비선형적인 실재를 선형적 모델로 근사하여 단순화시킨 모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화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별개의 현상들을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단순한 사실로 압축시키는 작업으로 '법칙'과 '원리'가 이에 해당된다. 일반화는 인간을 소재로 한 분야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과학만의 단순화된 고유 가치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추상화는 지적활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단순함의 한계까지 닿는 데 모든 정열을 쏟아 붓는다. 지금도 이들은 미지의 우주를 향해 눈꽃 같은 순수한 열정을 온전히 다 바치고 있다.

고대의 데모크리토스는 저자거리에서 물질의 한계인 원자를 생각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을 움직이는 원천을 불로 보았다. 이 두 철학자의 말을 현대물리학으로 보면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성 E=mc2로 풀이될 수 있다.

고전물리학은 압축과 포괄의 순환고리에 의해 더 이상 단순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뉴턴은 역자승법칙의 한계 선언을 통해 천상은 물론 지상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설명했고, 이어 쿨롱과, 비오-사바르도 이를 바탕으로 전자기 얼개를 갖추어 갔다. 그리고 맥스웰은 이전의 경험법칙들을 한데 묶어 단순함의 한계를 더욱 끌어내렸다. 19세기 말에 확립된 복잡한 열 현상도 '엔트로피'라는 한계 선언으로 정리되었다.

현대물리학 역시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경이적인 여행으로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광속의 한계를 선언함으로써 서로 얽힌 시공간을 받아들이게 된다. 원자 세계의 미묘한 모순을 담은 파울리의 편지를 받고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크는 자연에 내재된 측정의 한계를 선언하게 된다. 밀리컨도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전하의 한계치를 구하고, 본의 아니게 양자 세계의 문을 연 플랑크도 불연속적인 에너지 존재의 한계를 선언하게 된다. 앞으로도 인간은 한계의 밑바닥을 훑는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작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문턱에서 자연에 내재된 한계에 도달하려는 뜨거움을 식힐 겸 현대인들은 잠시 내면의 빛이 자기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살펴볼 여유가 필요함직하다. 무심천변 무심한 억새의 속삭임 자체가 행여 진리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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