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지원대책이 불신 받는 이유 
농어촌 지원대책이 불신 받는 이유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11.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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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찬성과 반대론자의 주장은 180도 다르다. 큰틀에서 ‘도약의 기회’와 ‘망국의 길’로 갈리고, 각론에서도 입장 차는 현격하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이 추가로 5.6%나 성장하고 일자리도 35만 개가 생긴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성장도 고용효과도 제로에 가깝다고 반박한다. 협정 당사국들의 전망도 ‘천양지차’다. 우리 정부는 해마다 1억4000만 달러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늘어난다 하고, 미국은 자기네 무역수지가 40억 달러가량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간에 때로는 ‘괴담’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대와 우려가 혼재된 착잡한 심정으로 FTA가 가져올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찬·반 진영의 공통된 진단은 한 가지뿐이다. 한·미 FTA가 결실을 가져오더라도, 그 과실은 주류가 독식해 분배의 질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의 완전 개방과 규제 철폐가 경쟁력을 갖춘 승자의 독식구조를 더욱 공고히 해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에서만큼은 큰 이견이 없다는 얘기다. 2·3차 산업과 농어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투자자본과 서민 근로자들이 FTA의 빛과 그림자를 나눠 갖는 상황이 명확하게 예견되다 보니 소위 그 ‘대책’이라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체결한 FTA에서 꾸준히 희생양 역할을 해 온 분야가 농업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야당이 요구하는 모든 농어촌 지원대책을 수용하겠다고 나설 정도이니, 역설적으로 한·미 FTA가 우리 농업에 미칠 타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정부는 농업 분야 피해가 12조원 정도로 예상되는 만큼 두 배에 가까운 22조원을 풀어 피해를 줄이고 농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에 기대를 거는 농업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존의 FTA 지원사업에 덧칠을 했을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의 정책도 신뢰를 잃은 탓이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칠레와 FTA를 체결하며 ‘FTA지원특별법’ 등 4개 특별지원법과 농업·농촌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농업 분야에 닥칠 파고에 대처했다. 이번 한·미 FTA 지원예산 22조원의 5배가 넘는 119조원 투융자 계획을 세우고 지금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책의 결과는 초라하다. 소득은 줄고 부채는 늘어나는 악순환은 여전하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농업으로 농가가 벌어들인 수입이 2005년 가구당 1181만원에서 지난해 1009만원으로 줄었다. 농가소득은 도시가구의 65%까지 추락했다. 반면 지난해 가구당 부채는 2721만원으로 2008년에 비해 5.5% 늘었다. 한때 줄어들던 농업인 신용불량자도 올해 들어 8월 현재 1만1783명으로 지난해(7560명)보다 무려 56%나 늘었다. 구제역 탓으로만 돌릴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정책 실패에 대한 정부의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 협상대표였던 한 인사는 지난해 ‘다방에서 사람들 만나 보조금 챙길 궁리나 한다’며 농업인들을 싸잡아 매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농업을 보호할 것이냐, 개혁할 것이냐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며 마치 농업을 갈 길 바쁜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천덕꾸러기로 몰아세웠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당초 계획됐던 한·미 FTA 기금을 출연하지 않았다. 국회 비준이 지연돼 보류했다고 한다. 농림수산식품부가 FTA의 그늘을 짊어지고갈 농어촌에 대해 최소한의 연민이라도 있었다면, 집행은 비준 후로 보류하되 기금은 계속 출연해 재원을 늘려 갔을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어줍잖은 핑계는 구호만 요란한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압축한다.

시설이나 장비 등 하드웨어에 자금을 쏟아 붓는 정부지원 방식은 한·칠레 FTA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와 다른 것이 없다. 그렇다면 결과도 뻔하다. 한·미 FTA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국내 농업을 수출농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대통령의 호언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농어촌 대책이 최소한의 믿음이라도 얻으려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세워져야 하고, 정책 수립의 주체도 탁상의 행정가가 아닌 농업인들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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