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라도 ‘드골’처럼 
떠날 때라도 ‘드골’처럼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10.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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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드골’과 관련해 이런 우스개가 전해진다. 대통령 재임 중 측근과 이런 대화를 나눴단다. “나중에(사후에) 앵발리드(Invalides)로 모셔야 되겠죠.” 파리에는 2개의 국립묘지가 있다. 전쟁 영웅들이 묻히는 앵발리드와 민간인으로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이 묻히는 팡테옹(Pantheon)이다. 참모는 이미 70을 넘긴 드골에게서 유사시 장례에 대한 지침을 받아야 했을 테고, 군인으로 2차 대전에서 프랑스를 구원한 드골은 당연히 앵발리드로 안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골은 참모의 질문을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나더러 코르시카 섬 출신의 하사관 옆에 누우란 말인가?” 나폴레옹 따위와 동격이 되기는 싫다는 오만이다. “그렇다면 팡테옹으로 가시겠습니까?” 한참 침묵하던 드골은 “예루살렘에 묻히는 것은 어떤가?”라고 되물었다. 이쯤되자 참모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각하께서는 체격이 커서 이스라엘 정부가 땅값으로 백만 달러는 부를 겁니다.” 드골이 결정타를 날린다. “사흘만 누웠다 일어나 돌려줄 텐데 백만 달러나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드골이 자신을 예수와 비교한 이 이야기는 언론이 만들어낸 풍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우스갯소리대로 드골은 어느 국립묘지도 선택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267㎞ 떨어진 고향 콜롱베의 성당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정신질환을 앓다 스무살 때 죽은 딸 옆에 눕겠다는 생전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묘비에도 그의 유언대로 이름과 출생·사망 연도만 기록했을 뿐 어떤 수식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가 퇴임 대통령과 가족에게 지급하는 연금도 거부했다. 그와 가족들이 받을 연금은 어린이 구호사업에 쓰였다. 가난에 시달리던 유족들이 드골의 생가를 팔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정계 은퇴도 인상적이다. 1969년 4월 자신이 추진한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그날 바로 콜롱베로 낙향해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두문불출, 1년 반 후 죽을 때까지 세속과 연을 끊고 사실상의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내기 위해 매입한 서울 내곡동 사저 터가 각종 의혹을 양산하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아들 명의로 매입한 대목에선 증여세 회피 논란이 일고, 청와대 경호처와 3개 필지를 지분을 나눠 공동매입한 부분에 대해서도 억측이 구구하다. 대통령의 아들은 공시지가보다 싸게, 경호처는 비싸게 구입한 부분에서는 공금전용 의혹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임기 말 ‘공정’을 강조해 온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실망스럽다. 정부 여론조사에서 국민 73%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고, 20~30대 젊은 층의 부정적 응답률은 더 높았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자신이 몸담고 있거나 몸담을 사회가 공정한 룰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보는 나라의 장래가 밝을 리 없다. 대통령이 공정을 외치며 낮은 곳을 지향한 것도 구성원들의 불신이 극에 달한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아들이 등장한 사저 터 매입 논란에서 거짓말이니 특혜니 혈세전용이니 하는 의혹들이 돌출되면서 그간 대통령이 유지해 온 언행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갖기 어렵게 됐다. 사회에 고착된 불공정을 바로잡겠다는 지도자의 구호조차도 허위에 불과했다는 또 하나의 불신만 낳은 셈이다.

청와대는 어제 대통령의 전면 백지화 지시를 발표하며 “매입 과정에서 실수나 오해가 있어서지, 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한나라당의 읍소가 있은 다음이다. 그러나 세상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오만한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 ‘실수’에 대해 낱낱이 해명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드골이 정치인으로 존경받는 것은 물러날 때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물러날 때조차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떠날 때와 떠나고 나서 잡음이 더 커지는 나라의 국민에게는 한없이 부러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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