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목숨들의 뿌리로서의 해
온갖 목숨들의 뿌리로서의 해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2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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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소장>

옛사람들이 목숨을 읽어낸 것들 가운데 뼈와 살로 이루어진 몸에 불과 물의 기운이 어우러져 움직이면 비로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일러 地水火風의 어우러짐이 곧 목숨이라고 한 것, 그중 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해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해 없는 목숨살이는 가능하지 않으니 운명의 절반은 해에 달려있다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을 터, 그래서 옛 현자들 가운데 해의 빛깔을 보고 시절을 읽어내기도 하고, 앞날을 점치기도 했던 것까지도 부질없는 짓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해를 헤아릴 때 절묘한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중 해와 지구의 거리도 예사로 보아넘길 수 없는 것, 해로부터 너무 가까운 금성이나 수성, 또는 지구보다 더 먼 화성이나 목성은 지구처럼 뭇 목숨살이가 번성할 수 없음, 그리하여 해와 적절한 거리에 있어서 여러 가지 목숨살이가 어우러지며 살아갈 수 있는 지점을 '골디락스 영역'이라고 한다는데, 이 우주 안에 지구 말고도 골디락스 영역이 존재할 가능성은 무한히 많을 것이라면서 그걸 찾는 과학적 노력들이 만만치 않다는 말도 들립니다.

지구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이 벌이는 그 해괴한 짓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짓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까이 있는 제 아비도 섬기지 못하여 집에서 쫓겨나서는 세상의 수많은 노인들 가운데 모실 만한 사람 찾아 양아버지로 삼겠다고 헤매는 막나니를 닮은 짓은 아니겠느냐 싶은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입가에 괴는 쓴웃음을 어쩌지 못하곤 합니다.

해의 작용은 여느 불이 그렇듯 자신을 태우는 독특한 생명현상으로 모든 살아 있는 이 땅의 목숨살이들에게 때를 따라 싱싱한 기운을 보내는 것, 신기한 것은 지구가 해에서 나오는 모든 기운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것들을 알맞게 걸러내는 장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니 골디락스 영역이라 하더라도 여타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다는 사실도 한 번은 짚어볼 필요가 있고, 그럴 때 이 땅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은 그만큼 더 크게 생길 수밖에 없음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 말일 것입니다.

물이 있는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해의 기운을 모시고 산다는 이 놀라운 사실만으로도 삶은 넉넉하게 신비롭고 황홀한 것, 그러니 한순간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되고, 해가 그렇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자신의 목숨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윤리적 성찰까지도 뜻없거나 억지로 갖다 붙이는 짓이 아니라는 것도 이쯤에서 한번 짚어보는 것도 그리 엇나간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요즘 세상을 함부로 살아가는 사람들, 결국은 쓰레기가 되고 말 눈앞의 이익 때문에 역사도 거스르고 저 사는 땅마저도 마구 짓밟는 짓과 꼴을 보며 안타까워 발도 구르고 미어지는 가슴에 칙칙한 불안이 휘돌기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해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어 그것들을 지울 수 있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봐야 그것들의 부질없는 삶에 견줄 때 영원하다고 해도 좋을 해와 지구의 목숨길이, 거기 운명을 걸어놓고 나그네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그렇게 가면서 산다는 건 이런 것이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삶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헤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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