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가 아니라 만들어 가야하는 복지세상
저절로가 아니라 만들어 가야하는 복지세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4.3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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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칼럼
이병하 <충북대 사회적기업지원기관 선임PM>

필자를 포함해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좋은 일 하시네요"란 인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산다. 복지사업은 좋은 일(Good Job)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막연한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한발씩 복지세상의 실체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복지'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기득권층, 즉 돈이나 명예를 좀 가졌다 하는 사람들이다.

왜 일부 기득권층은 복지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할까

복지세상은 구성원들이 차별 없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예약되어 있어 기다리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탑을 쌓아올리듯 차곡차곡 쌓으며 정성스레 만들어 가야하는 세상이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듯, 복지세상 만들기를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서도 준비가 필요하다. 학자들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준비물로 '구성원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재화 생산력의 확보'와 '나눔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통된 가치'를 꼽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미 60억의 인구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식량, 재화의 자급자족능력은 이미 갖추고 있다. FAO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1984년 수준의 농업 생산력으로도 세계는 120억의 인구가 한 사람당 하루 2천400~2천700칼로리의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력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필자는 생산력보다 오히려 나눔에 대한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복지세상을 만들어 갈 주체들이 공유해야 할 기본 가치를 살펴보자.

첫째, 복지책임을 개인이 아닌 공공 영역 즉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으로 인식해야 한다. 복지세상의 최대 적인 '차별과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복지책임을 개인, 가족 등 비공식적 영역으로 돌리는 데서 기인한다. 돈이 없이 병에 걸린 자식과 부모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능력없는 네 책임이야"라고 매몰차게 결론지어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욕구(Needs)에 따른 분배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현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분배가치는 '형평성' 이다. 형평이란 기여도에 따른 분배를 말한다.

예를 들어 30대 중반의 A군과 B군은 입사동기로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둘이 하는 일도 동일하며, 회사에서는 동일한 노동의 대가(월급)를 준다. 이것이 형평원칙이다. 그런데 A군과 B군의 생활환경을 보면, A군은 기혼으로 어린 자녀가 셋이나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발달장애로 많은 시간투자와 치료비용이 소요되고 있었다.

게다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도 함께 모시고 있었다. 자녀·부모수발로 인해 아내는 맞벌이를 할 수 없었고, 부모님들도 벌어놓은 재산이 없어서 오로지 A군의 월급에 의존하여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처지였다. 이에 비해 B군은 혼자살고 있고, 부모님 또한 부유해 오히려 B군이 가끔씩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타가는 상황이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현재의 상황에서 A군과 B군 중 생활비용에 대한 필요는 누가 더 높은가 당연히 A군일 것이다. 가족 수가 많은 관계로 주거비용 부담도 높을 것이며, 자녀부양비, 특히 장애자녀는 상당히 많은 비용지출을 필요로 할 것이다. 또한 노환이 있으신 부모님의 수발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욕구에 따른 분배는 이런 개인 및 가족적 필요비용에 기반한다. 즉, A군이 기초생활을 영위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필요 비용을 공공영역에서 부담해 주는 세상이 바로 복지세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금부담에 대한 용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복지책임은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동책임임을 표현할 것인가 당연히 욕구에 따른 분배를 실현할 수 있는 조직과 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국가와 세금이다.

국가는 우리 모두를 대신해 세금을 통해 복지기금을 만들고 이를 욕구원칙에 입각해 분배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따라서 복지 선진국일수록 수입대비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이 갖춰지는 시점에서 복지세상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독수리가 창공을 멋지게 날고 있어도, 그 눈에는 배고픔을 채워야할 썩은 동물사체만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미사여구를 써가며 복지와 나눔을 떠들어대도, 정작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면, 복지세상과는 동떨어진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만들어 가야하는 우리들의 복지세상은 스스로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가치를 공유하는 데서 서서히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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