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끊긴 '혼새' 울음소리가 궁금하다
갑자기 끊긴 '혼새' 울음소리가 궁금하다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0.04.19 2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며칠 전 보은에서 한 지인을 만났는데 보자마자 혀 내두르는 소릴 했다. 자신의 집 뒷산에서 요즘 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린다는 거였다. 가뜩이나 농삿일이 잘 안 돼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은데 애써 눈좀 붙이려고 하면 뜬금없이 귀신소리가 들려와 오던 잠이 백리는 달아난다고 넋두리했다. 그것도 늦은 밤과 꼭두새벽만 되면 들려오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릴 했다.

정황을 들어보니 새소리 같기에 걱정말라 했더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러느냐, 말 같지 않은 소리 말라"고 되받았다. 할 수 없이 설명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여름새 중 호랑지빠귀가 있는데, 늦은 밤과 새벽녘에 사람이 휘파람 불듯 "히~잇 호~옷, 휘~잇 씨~이" 소릴 내며 구슬프게 울기 때문에 다들 번번히 놀란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의혹이 풀렸는 듯 기어드는 소리로 괜히 놀랐단다.

필자가 호랑지빠귀를 알게 된 것은 절 생활하던 1980년대초. 머리 식힐 겸 산을 내려갔다가 오밤중에 절을 오르는데 난데없이 귀신소리가 들려왔다. 멈춰서면 조용해지고 걸어가면 소릴 내니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작정하고 따라오는 것 같아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앞이나 보여야 무엇인가 확인이라도 하지 칠흑 같은 어둠속인지라 별 도리없이 '돈내기 걸음'으로 진땀을 흘려야 했다.

오기가 생겼다. 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괴상한 소리로 사람 혼을 빼앗았을까. 호기심에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귀신은 아닐 테고 짐승 아니면 새일 텐데, 그 정체가 궁금해 이튿날 눈 뜨는 대로 전날 밤 그 장소로 향했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이었지만 제 아무리 날고 뛰는 짐승이라도 밝아오는 새벽녘엔 기가 한풀 꺾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불과 몇시간 전 똥줄빠지게 올라왔던 바로 그 계곡에 도착했을 때였다. 휘파람으로 전날 들었던 그 소리를 흉내내니 (속아넘어갔던지) 곧바로 응답이 왔다. "히~잇 호~옷, 휘~잇 씨~이" 참으로 신기했다. 어릴 적 '잠자리 잡던 걸음'으로 숨죽여 다가갔다. 누군가라도 그 모습을 봤더라면 되레 기절초풍할 형국이었다. 인적없는 산중인 데다 입으로는 해괴한 휘파람 소릴 내지, 걸음과 자세는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일 것같이 진지하지, 게다가 시간도 어슴푸레한 새벽녘이지, 누가 봐도 가관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싱거웠다. 예상대로 주범이 새(鳥)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기왕 나선 김에 둥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한 시간쯤 더 숨바꼭질 한 끝에 이끼 낀 바위밑에서 보금자리를 찾아내고는 새끼들에게 지렁이를 잡아다 먹이는 것까지 알아냈다.

호랑지빠귀는 혼새라고 불렸다. 구슬픈 소리로 혼을 빼앗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유령새 또는 지옥새로 부르는 이유도 같다. 우리나라엔 매년 4월초·중순쯤 날아오는데 올핸 이례적으로 3월 중순께 충북 보은과 청원 지역에서 발견됐다. 예년보다 10일가량 이른 시기다.

오자마자 특유의 소릴 내며 부산하게 둥지틀던 호랑지빠귀가 지난 14일 새벽녘엔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더니 15일 새벽부터 어제까지는 아예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 갑자기 찾아든 4월 추위에 놀란 탓일까. 아니면 그 어떤 훼방꾼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것일까. 갈팡질팡하는 날씨에 유례없이 이르게 고향 찾아와 괜한 생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럽다.

가슴에 호랑무늬를 하고 숲속을 파헤치며 둥지재료 찾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호랑지빠귀들. 짓다 만 둥지속에 '잃은 꿈' 덩그러니 남겨놓고 대체 어딜 갔단 말인가. 이 봄이 가져온 또 하나의 좌절을 바라보면서 도둑이 제발 저리는 심정으로 무사안녕을 빌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