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행복합니다
이래서 행복합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1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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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반숭례 <수필가>
   평소에 토요일은 두문불출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오늘은 옆집 친구네 고추 심는 데 내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아침 여덟시에 콤비 네 명이 모였다. 농사일은 이제 기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힘든 일은 없다. 다른 농작물보다 고추 심는 데는 사람손이 많이 필요해서 손발이 맞아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심을 수 있다. 손발이 척척인 콤비가 만났으니 세 시간여 만에 고추 천육백여개나 되는 일을 마쳤다. 이제 품앗이로 하는 고추심기가 오늘로서 다 끝났다.

뒷산으로 올라갔다. 커피 한잔으로 피로를 풀면서 풀 위에 벌러덩 누웠다, 남자 둘 여자 둘이 누워 친구가 부르는 노래 가락에 나는 발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는데 친구 남편이 붕~부웅하고 방귀를 연거퍼 뀐다. 큰소리로 웃을 수는 없어 입을 막고 킥킥 거렸다. 이젠 옆집 아저씨가 더 심하다. 벌떡 일어난 친구가 '에이 숭례야 웃자 ' 우리 네 명은 '하하하 깔깔 까르르' 웃어댔다. 한참을 웃던 아저씨는 금세 표정관리에 들어가더니 자연스레 생기는 생리현상을 가지고 '두 여자가 오두방정을 떤다'는 소리에 다시 배꼽을 쥐었다. 아랫집 안주인이 점심을 들고 나왔다. 상추쌈에 돼지고기 볶음, 푹 익은 김치와 오이 토마토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여름날 아침은 다른 계절보다 한 시간정도 일찍 일어난다. 그 이유는 마당에 풀을 뽑거나 밭일을 할 때 해가 중천에 떠올라 뜨거울 때를 피하기 위해서다. 한적하리만치 고요한 아침 시골마을에 트럼펫이 울려 퍼진다. 고추밭 고랑에 앉아 풀을 뽑다가 '밤안개 솔베이지의 노래' 가 들려오는 트럼펫소리를 따라 가보니 산 위에 있는 하얀 집이다. 두 내외가 머루 잎이 우거진 숲에서 불고 있다. 낭만 있는 아름다운 부부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산을 내려와 고추밭고랑에 누웠다. 눈이 부신 맑은 하늘가에 그리움이 맴을 돈다. '베사메무초, 아베마리아, 님은 먼 곳에'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노래를 따라 부른다. 하얀 집 안주인은 남을 즐겁게 해 주는 개그맨 못지않은 재주가 많다. 맛있는 음식을 하거나 수확한 과일을 딸 때는 광순이와 나를 초대해서 푸짐하게 먹여주고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선물인 웃음까지 곁들여 허심탄회하게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옆집 친구이름은 광순이다. 둘이는 누구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했다. 광순이와 나는 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남들은 우리의 행동을 보고 무슨 청승이냐고 할 망정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추밭에서 붉게 익은 고추를 딴다. 비 내리는 날 고추를 따서 말리지 못하면 버려야 하고 가격이 하락된다고 걱정해도. 상품가치 있는 고추는 내다 팔고 그 나머지는 내가 먹는다라는 배짱을 내밀며 빗속에 둘이서 고추밭에서의 뽕짝 장단이 흥에 겹다. 옆집 아저씨와 우리 어머니는 청개구리가 울면 두 여자의 광란이 눈에 선하여 '이제 비는 그만 와도 되는데' 하시며 하늘만 쳐다보신다.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힘들면 양쪽 고춧대에 수건을 쳐놓고 나는 땅바닥에 눕는다. 등짝도 시원하고 파충류가 내 다리를 덥썩 깨물까봐 오싹해 지지만, 고추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네모나고 세모나고 삐뚤어져 있고 길죽하고 구부러진 하늘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

행복은 보이지 않은 것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작은 것부터 사랑하며 풀씨처럼 영글어 가는 내 자신을 키워가야 한다. 감사함을 통하여 삶이 부유해지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을 알게 해준 이웃들. 인정 있고 낭만적인 이웃을 만나 꽃잎 하나하나에 향기가 묻어나는 들꽃 같은 우정으로 살아가는 호박꽃 시골생활은 기적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고 논밭, 산과 들로 달리는 행복열차를 타고 오늘도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님의 행복이란 시를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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