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새 대가리'라 하는가
누가 '새 대가리'라 하는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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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프리랜서>

우리말에 '새 까먹은 소리'라는 게 있다. 근거 없는 말을 듣고 잘못 옮긴 헛소문이란 뜻이다. 또 기억력이 모자라 곧잘 깜빡깜빡하는 사람을 일컬어 '새대가리'라 놀려대기도 한다. 그만큼 새는 분별력이 없는 어리석은 존재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새란 존재를 잘 모르는데서 비롯된 엉뚱한 발상이다. 새의 습성과 생태를 어느 정도 아는 이라면 그러한 인식이 전혀 근거 없는 '새 까먹은 소리'란 걸 알 것이다. 새가 결코 어리석지 않고 오히려 영악한 존재란 사실은 다음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우선 새는 사람을 알아본다. 총을 든 사람과 안 든 사람, 자신을 해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낚싯대를 메고 다가갈때와 총을 메고 다가갈 때 반응이 다르다.

또 아무리 큰 소리라도 자신을 향해 외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안다. 도로변의 새들이 차의 클랙슨 소리에 놀라지 않고 행락지 주변의 새들이 커다란 스피커 소음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또 새 가운데에는 먹이를 저장할 줄 아는 새들이 있다. 흔히 산까치로 불리는 어치는 많게는 하루에 300개 이상, 한 해 가을에 무려 4000개나 되는 먹이를 물어다 저장했다가 나중에 찾아 먹는다. 때까치와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딱따구리류도 먹이를 저장할 줄 안다.

본능이긴 하지만 새들은 대부분 집짓기의 명수이기도 하다. 처음엔 굵고 거친 것을 물어다 기초를 다진 뒤에 묶을 건 묶고 붙일 건 붙여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면 실낱같이 가늘고 부드러운 재료를 물어다 마무리를 짓는다. 어느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번듯한 집을 짓는다.

또 새들은 먹을거리를 찾는 데도 선수다. 파종기가 돼서 농부들이 옥수수와 콩 종자를 정성껏 심어놓기만 하면 어느 샌가 몽땅 파먹어 헛수고하기 일쑤다. 파종한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무리 머리를 써 봐도 헛일이다. 한 농부는 지난해 옥수수 씨앗을 세 번이나 뿌렸지만 모두 다 꿩과 산비둘기 밥이 되고 말았다고 하소연하는 걸 들었다.

하지만 옥수수씨앗 세 번 뿌린 건 물새들에게 비단잉어 빼앗긴 어부에 비하면 도둑맞은() 축에도 못 낀다. 지난해 들은 한 어부의 얘기는 대충 이렇다. 논을 개조해 만든 양어장에 물새들이 하도 많이 날아와 비단잉어 새끼들을 먹어 치우기에 마음먹고 차광막과 새그물을 사다 사방에 쳐 놨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유자재로 먹이를 잡아먹더란다. 하루는 어이가 없어 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백로와 왜가리는 새그물 위에 걸터앉아 비단잉어를 잡아먹고, 덩치 작은 물총새는 눈금이 5밖에 되지 않는 새그물을 마치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먹이를 잡아먹더라는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부터 나오더라나.

이 같은 행태를 보고 그 누가 새대가리라 하겠는가. 세월이 바뀌니 새들의 지능도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기자가 아는 새의 지능은 가히 놀랄 노자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주차해 놓는 차 안에 둥지를 튼 어느 딱새 부부의 영악함이 몇 년 전 TV에 방영됐을 때 새삼 전율을 느낀 적이 있는데 엊그제엔 그보다 더한 일을 직접 겪었다. 다름 아닌 꼭 2주 전에 벗어놓은 장화를 신다가 그 안에서 딱새가 튀어나와 기절초풍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장화 안이 온통 새집 투성이였다.

그날 그 장화를 꼭 신어야 했기에 새 둥지를 털어내 버리고 말았지만 괜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영 떠나지 않는다. 딱새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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