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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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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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강대헌 교사

사람에게는 누구나 가시가 있다. 어떤 사람의 가시는 성격이다. 무슨 일을 잘 해내 나가다가도 결국엔 다른 이들과 쓸데없는 다툼을 만들어 그르치고 만다. 한 치도 용납할 줄 모르는 완고(頑固)함 때문에 언제나 걸려 넘어지곤 한다. 심지어 바위를 발로 걷어차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의 가시는 가족이다. 가족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핏줄을 부인하려고 한다. 오바마(B. H. Obama)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을 갖고 제 얼굴에 침 뱉는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행보(行步)에 빠르기만 하다.

어떤 사람의 가시는 질병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질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생활의 변화를 강요당하고 만다. 불편한 일만 늘어나고, 신세타령이 절로 나게 된다.

어떤 사람의 가시는 돈이다. 돈을 부리며 살아야 하는데, 돈에 휘둘려 쩔쩔맨다. 폼 나게 옷을 차려 입고 외출해도 그를 진정으로 따르는 이들이 없다. 그 사람 주변엔 내가 경제(經濟)를 업고 다닌다는 자화자찬의 풍경(風磬) 소리만 요란하다.

어떤 사람의 가시는 명예이고, 어떤 사람의 가시는 권력이다. 사람마다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하나의 아픔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자신의 가시인 셈이다.

기독교 역사의 VIP였던 바울로(Paulus)에게도 평생에 걸쳐 가시가 있었다고 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의 고백을 나름대로 조금 고쳐서 옮겨 보았다. '하늘의 신께서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나는 그분께 이것을 없애 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청하였지만, 그분께선 오히려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신께서 가장 경계하시는 것은 사람의 교만(驕慢)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차피 실낙원(失樂園)이다. 여기저기 가시덤불이 무성한 세상이다. 아직도 강렬하고 달콤한 유혹의 손길은 철수(撤收)하지 않았다. 매서운 가시를 낳는 유혹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든다. 베팅(betting)만이 살 길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한다. 복낙원(復樂園)의 길은 그저 멀게만 느껴진다.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달라진 것이 없다. 나도 가시요, 세상도 가시이니 서로 찌르며 살 뿐이다. 정녕(丁寧) 예서 멈추고 말 것인가.

장미(薔薇)가 아름다운 이유를 돌아본다.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장미꽃에 가시가 달려서가 아니라, 가시나무에 장미꽃이 피었기 때문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 가시나무숲에도 새가 산다. 가시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기보다는 고슴도치의 사랑을 배우는 편이 한결 낫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껴안아도 아프지 않은 기쁜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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