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동생에 고마우신 형님
못난 동생에 고마우신 형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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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 규 정 소설가

팔순을 한참이나 넘기신 어머님에게 한동안 전화조차 못 드렸다. 지난 주말에야 뵙겠다고 쫓아갔더니, 어쩌다 뜬금없이 찾아오는 자식이 뭐가 그렇게 반갑다고 벌떡 일어서는 어머니가 곧바로 넘어질듯이 비틀거렸다. 형수님이 곧바로 붙잡아주셨기에 천만 다행이었는데. 형수님에게 붙잡혀서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함지박처럼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도 못하셨다.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마주보고 주저앉아서다. 우리와 달리 가만히 앉아서도 날비 맞듯이 식은땀을 흘리시는 어머니가 움켜쥐는 손수건조차 쉴 사이가 없다. 오죽하면 내가 왜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시냐고 여쭈었더니, 몸뚱이는 으슬으슬 추우면서도 이상하게 식은땀이 흐른다는 푸념이다. 그것이 또한 기력이 없어서라고 말씀하시는 형수님이 보양음식은 몰론 보혈주사에서도 소용없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나는 어쩌다 찾아뵙는 노환에 걱정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면 슬그머니 잊어버린다. 그런데 함께 살면서 지켜보시는 형님과 형수님의 속내는 어림해서도 새카만 숯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한참이나 지나서도 보이지 않는 형님을 찾았더니, 그제야 가정용 톱과 전지가위를 찾아들고 나가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주민공원으로 가셨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로서는 마땅찮은 곳이라 한참이나 주춤거리다 일어섰다.

형님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자그만 공원이 하나있다. 사실은 부르기 좋아서 공원이지 자그만 공터에 느티나무와 풀숲이 있을 뿐이다. 시골에 살았던 어머님이 바람을 쏘이다 돌아오는 공원으로 시내에서는 그만한 자리도 흔하지 않다. 형님이 또한 어머니 때문인지 가끔이나마 잡풀을 뽑아내고 거칠게 뻗치는 나뭇가지를 잘라주는데, 그것도 빠듯한 직장생활에 쉽지 않아서 단단히 작심하고 벼르고서야 쫓아가는 것이다.

나로서는 마땅찮아도 형님을 뵙겠다고 찾아가면서다. 잡풀을 뽑아내고 거칠게 뻗치는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형님의 얼굴은 물론 등줄기조차 식은땀으로 뒤범벅이다. 나는 바라보는 것조차 안타까웠지만 말리지도 못하는 것은, 지금에서도 어머니가 바람을 쏘이겠다고 쫓아올지 모른다는 형님의 소망을 접어주기 싫어서다.

동생들이 왔다면 어머님 못지않게 반기시는 형님이다. 오죽하면 친구들과 술자리조차 술잔을 내던지고 헐레벌떡 쫓아오시는데, 그것이 또한 빈손으로 객지에 나가서도 아무 탈 없이 살아주는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워서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왔다는 인사를 건네서도, 이전과 달리 고개만 끄덕이고는 여전히 움켜쥐는 잡풀에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자그만 공원에서도 하룻저녁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머쓱하게 쳐다보던 나조차 거들겠다고 덤벼들었지만, 어설프게 잘라내는 나뭇가지에 식은땀만 흘리다가 전지가위만 망가뜨리고 말았다. 내가 망가져버린 전지가위에 주저앉아서야 장갑을 벗어던지는 형님이 돌아가자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어차피 글을 쓰려거든 많은 것을 체험하고 직접 느끼면서 공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형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에서도 체험하는 느낌과 공감하는 감성이 어색하다는 자책에서다. 형님이 또한 나조차 달려들기를 기다렸던 것은. 잠시나마 누군가를 위해서 식은땀을 흘려보는 체험의 감성을 느껴보라는 가르침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것을 알아차리는 형님이 고맙고 자랑스럽지만, 작심삼일에 익숙한 내가 고맙다는 생각조차도 며칠이나 가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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