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반딧불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0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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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신 종 석 <시인>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시나브로 사라져 버린 것들을 궁금해 하거나 기억하는 일에 게으르다. 기억의 창고에 갇혀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의 실생활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것이면 말할 것도 없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주의에 늘 함께 있던 것들 중에 사라져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본다. 그것이 사람이거나 동물이거나 아니면 기억 속에 있는 식물 또는 가끔 생각나는 추억 일 수도 있다.

가끔 시간을 함께 하는 지인들 몇몇이 오랜만에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창밖에 자동차 불빛과 네온의 하려한 불빛이 거리를 수놓기 시작했다. 그 불빛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입에서 "그 많던 반딧불 이는 어디로 갔을까" 라는 말이 탄식처럼 나왔다. 식사를 하던 우리들은 그 말에 감전된 듯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잠시 후 저마다 반딧불이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내친김에 반딧불이 보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도깨비에 홀린 듯이 반딧불이가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이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반딧불이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며 확신을 갖지 못했다.

반딧불이 하면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져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해 지면 조그맣고 파란 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풀이 우거진 곳엔 더 많은 불빛이 춤을 추었다 오빠가 도깨비불이라고 겁을 주던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머리가 쭈뼛해지고 등줄기에 땀이 나서 발걸음도 떼어 놓지 못하고 울어 버린 생각이 난다. 나중에야 그것은 도깨비불이 아니라 어른들이 말하는 개똥벌레라는 것을 알았다. 장난이 심한 오빠는 반딧불 이를 잡아 파란 불빛이 나는 꽁무니를 만져 보라는 말에 뜨거울 까봐 질 겁을 한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키워주던 신기한 벌레가 세월이 갈수록 보기 어려워지고 사라져 가고 없다 농촌의 환경오염과 먹이사슬의 숙주가 살고 있는 하천 오염으로 이하여 그들의 서식지가 점점 사라지고 급기야는 무주 반딧불이 서식지 일대를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하였다.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반딧불이 뿐이랴, 제비, 매미, 고추잠자리, 참새 등 우리 곁에서 늘 함께 하던 것들이 어느 날부터 보기가 어렵다.

우리 일행이 잃어버린 기억속의 반딧불이 찾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불빛 하나 없는 어느 한적한곳이었다. 냇가를 끼고 있는 산자락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불빛을 숨겼다.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하나 둘 불빛이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도깨비불에 겁먹었던 것처럼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번에 흐르는 땀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환희에 벅찬 감격의 오한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반딧불이와의 제회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반딧불이는 우리들이 사는 곳이 너무 환해진 탓에 불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저들은 반려를 찾는 일이 어려웠을 것이고 그들은 점점 사라져 갔을 것이다. 우리가 불빛을 조금만 낮춘다면 그들이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사라져 가고 있는 기역속의 동 식물을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면 우리 모두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는 환경지킴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밤하늘을 수놓는 반딧불이 쫓아 무한한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밤은 깊어가고 몇 마리의 반딧불이 춤사위는 격렬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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