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탄다'는 것이란
산을 '탄다'는 것이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0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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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학과교수>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웰빙(Well-being) 바람이 여러 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웰빙운동의 방법으로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등산일 것이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웰빙이라 생각하여 먹고 소비하는 것에 치중을 둔 물질적인 욕구충족 위주의 웰빙이 전부인양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잘 사는 것이 웰빙인가를 등산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건강회복이나 유지를 위해 등산을 택했다 할 지라도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경지를 맛볼 수 있다면 그만큼 웰빙, 즉 잘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등산만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령 태권도를 선택한 사람도 그것을 통해 건강해지고 활기를 되찾는다면 그만큼 삶의 원동력을 얻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을 타면 그보다 훨씬 값진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게 등산처럼 재미없고 허무한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가 있다. 기껏 등산하는 사람들 뒤따라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 다다르면 '야호' 한 번 소리지르고 다시 내려오니 죽기 살기로 오른 산에서 본 것은 결국 앞의 사람 엉덩이 밖에 없었다고 불평한다. 뭐 볼게 있어 그 힘든 산을 가느냐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산을 잘 타면 타는 만큼 볼 것도 많아진다고 한다.

지난주에 '등산도 배워야 잘 탄다' 칼럼을 읽었던 독자 중에는 "당신이 언제 그렇게 등산을 했다고 그런 글을 쓰느냐"고 한마디 했다. 맞는 말씀이다. 무슨 등산회 소속도 아니고 소위 등산을 통해 잘 다져진 체구도 아닌 내가 기껏 가봐야 우암산이나 상당산성 산보 정도겠지라는 비아냥 섞인 말투이다. 그러나 우암산과 상당산에는 정상이 있고 가야할 산길도 있으니 내가 제일 많이 오르는 山임에는 틀림없다.

우암산과 상당산을 탄다고 말하면 웃긴다고 할 것 같아 그냥 오른다고 하자. 그런 내가 히말라야 설산을 코앞에서 목격할 수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왔다.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쓴다기보다 산을 타면서 죽음을 코앞에서 경험하기도 하여 인간의 무력함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게 한 산신령(산에서 사는 모든 주인들을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평소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하찮은 것들이 모두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에 산을 옮겨 적을 뿐이다.

등산하는 것을 흔히 '산을 탄다'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정상에 올라 여유있게 아래를 내려다 볼 때만이 알 수 있다. 헉헉거리며 올라온 뒤에 "이제 다 왔다. 내려갈 땐 그래도 힘이 덜 들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찌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는가. 지금(현재) 몸은 정상에 있으면서 마음은 벌써 내려갈 생각으로 미래에 가 있으니 말이다.

진실로 산을 탈 정도가 되려면 굽이굽이 산줄기가 있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할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리듬을 타야 한다. 산 흐름의 굴곡이 심한 산일수록 산 타기가 어렵고 힘이 든다. 그러나 그 흐름을 알고 매 순간을 순응하면 산타기가 수월할 뿐만 아니라 위의 산신령 기운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흐름이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흐름을 거스르면 파도를 거슬러 힘들게 타는 만큼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 흐름을 아는 사람은 비교적 수월하게 갈 수 있어 힘이 덜 들 수 있다. 어차피 인생은 고(苦)다. 산을 타는 힘든 것만큼 고(苦)를 인정하고 흐름을 즐기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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