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가을 평양, 낙엽이 쌓이고 있다
2007 가을 평양, 낙엽이 쌓이고 있다
  • 김영회(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회장)
  • 승인 2007.11.0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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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소소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햇볕은 맑았지만 어딘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듣던 대로였습니다. 널찍한 활주로에는 고작 중국 여객기 1대와 북한의 고려민항기 10여대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전 11시 김포공항을 떠난 아시아나 전세기가 서해 직항로를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12시였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제약·의료업계 및 은행연합회 등 후원단체의 기증을 받은 28억원 상당의 의료기기와 약품을 평양적십자병원에 전달하기 위해 75명의 대표단을 꾸려 지난달 30일 북한을 방문한 것입니다. 공항에는 조선적십자 최성익 부위원장과 관계자들이 미리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1948년 문을 열었다는 평양적십자병원은 산하에 14개 전문병원을 거느리고 있는 북한 최대의 종합병원입니다. 1500명의 의료진을 합쳐 2000명이 근무하는 이 병원은 1000병상을 운영하고 있지만, 노후된 의료장비는 우리의 1980년대 수준이라고 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4년 동안 128억8700만원 상당의 지원을 해 왔는데 안타까운 것은 남쪽에서 지원한 첨단장비가 작동미숙으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전기가 모자라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병원에는 날마다 전국에서 1000여명의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경제가 어려운 것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해만 지면 암흑으로 변하는 도시는 그것을 먼저 말해 주었습니다.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이 없으니 온 천지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아파트의 희미한 불빛만이 전부였습니다.

평양을 방문준인 적십자 간부들

마천루처럼 시가를 메운 아파트들은 하나같이 페인트색이 바래 있었고 짓다만 105층의 유경호텔은 흉물이 되어 서있었습니다. 일행이 묵은 44층의 쌍둥이 빌딩 고려호텔은 덩치만 컸지 관리가 안 돼 그 시설은 남쪽의 장급도 안 되는 조악한 수준이었습니다. 평양을 '죽음의 도시'니 '잠자는 도시'니 하고 기사를 쓴 기자들의 '악의'가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구 200만의 도시, 평양에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즐비합니다. 주체사상탑을 비롯해 개선문, 릉라도 경기장, 학생소년궁전, 미완성인 105층의 류경호텔, 등등….
대동강 변에 우뚝 서있는 주체사상탑에 올라가 보면 평양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높이가 170m인 거대한 주체사상탑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꼭대기 20m는 불길 모양의 빨강 투명 봉화모양으로 밤에는 안에서 오렌지색이 빛나고 흔들거려 마치 횃불과 같았습니다. 또 탑 정면 대동강에는 170m나 솟아오르는 분수가 있어 밤이면 장관을 이룹니다.


탑 정상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멀리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2위라는 릉라도 5·1경기장이 보입니다. 북북서쪽으로는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따 더 크게 지었다는 개선문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높이가 330m라는 짓다만 105층 피라미드 모양의 류경호텔이 보입니다.


서쪽으로는 성곽과 같은 형태를 한 대형 도서관 인민대학습당이, 남서쪽으로는 트윈타워 고려호텔이, 남쪽으로는 양의 뿔을 닮아 이름 지었다는 48층짜리 량각도호텔이, 북동쪽으로는 노동당 창립기념탑이 보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인민 개개인의 삶과는 무관하게 체제의 우수성을 자랑하려는 데서 나온 기념물들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나흘 동안 우리 일행은 여러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첫날 백선행기념관을 필두로 대동강의 유서 깊은 대동문, 묘향산의 보현사 국제친선전람관 서산대사 사당, 만경대 김일성생가, 개선문, 주체사상탑, 평양학생 소년궁전 등등 그들이 자랑할 만한 곳은 모두 가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평양은 깨끗했습니다. 비록 큰 건물마다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선전구호가 눈에 거슬렸으나 간판으로 뒤범벅이 된 남쪽의 지저분한 도시들에 비하면 단정했습니다. 아파트에 도색을 새로 하고 차선만이라도 산뜻이 긋고 전기만 제대로 들어온다면 평양은 유럽의 어느 곳 못지않게 탈바꿈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980년대 북한을 방문한 서방의 한 기자가 "평양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불가리아의 소피아보다 더 아름답다"고 쓴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주체사상탑에서 바라본 평양시가. 대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연했고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남쪽 때문이 아니고 미국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목을 조이듯 온갖 경제제재를 가해 어려움이 겹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핵문제와 6자회담이 잘 풀리고 지난 번 남북정상회담 이후 전망이 밝다고 믿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처럼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역력해 보였습니다.


체류 마지막 날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한적십자 장재언 위원장을 위한 답례만찬에서 "학생소년궁전 어린이들의 묘기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싸움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그 어린이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자"고 격앙된 심경을 토로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3박 4일간의 주마간산이었지만, 모두에게 유익한 여행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모든 여행은 아쉽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아쉬운 여행은 처음"이라고. 순안 공항으로 나오는 길가에는 황금 빛 노란 은행잎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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