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대통령!
충청도 대통령!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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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 덕 현 <편집국장>

충북 영동에 삼도봉(三道峯)이라는 높은 산이 있다. 충청 전라 경상이 경계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이 산 정상에 오르면 아주 재미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말 그대로 충청과 영·호남 등산객들이 한 곳에 모이다보니 특히 가장 많이 몰리는 점심 때 쯤이면 여기 저기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장관이다. 각 지역의 사투리가 빚어내는 화음() 때문이다. 전라도 사투리가 들리는가 싶으면 갑자기 경상도 말투로 바뀌고 잠시 뜸하다 하면 이번엔 충청도 사투리가 끼어 든다. 세 지역의 사투리가 동시에 산 정상의 허공에 울릴 땐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충청도 어투가 전라도나 경상도 말투보다 강도에 있어 역시 약하다는 사실이다. 흔한 말로 께롱께롱(호남)이나 쏼라쏼라(영남)의 틈바구니에서 아버지 돌 굴러가유∼∼(충청)는 묻히기 십상이다. 별 게 아니지만, 이런 것에서조차 밀려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기분은 나쁘다.

요즘 대선후보들이 충청도 특히 충북에 내려오면 빠지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다. 이른바 충청도에 대한 아부성 발언이다. 좋게 생각하면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인정 내지 기대감의 표출이겠지만, 냉정하게 짚어 보면 이것만큼 충청을 우습게 보는 발언도 없다.

지난달 21일 서울서 열린 '2007 충청인 문화 큰 마당'을 찾은 후보들의 발언을 보자. 충청이 한국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이명박), 충청수도 시대를 열겠다(정동영)…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또 다른 장소에서 어떤 후보는 충북이 대통령 터라고까지 했다. 만약 이런 말을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보나마나 어느 한쪽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어떤 후보도 영·호남에선 충청도나 충북에서 한 것처럼 자기의 간까지 빼주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충청도만 만나면 아주 작심하고 입을 연다. 마치 무슨 큰 시혜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응석은 항상 이쪽에서 먼저 부렸다. 역대 대선에서 승패를 가른 표차가 충북에서의 표차와 비슷하다고 해서 '대선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거나 '충북에 잘 보여야 한다'며 후보들에게 경쟁적으로 아양을 떨어 왔잖은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충북의 표 비중은 전국의 3%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97%가 들러리란 말인가. 이런 셈법에 안주하며 응석만 부린 결과가 반세기 동안 대통령은커녕 총리 한 명 못 낸 불임도(不姙道)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 제의한다. 앞으로 충북에 와서, 그것도 전라도나 경상도를 오르내리다가 마치 정거장을 거쳐가듯 잠시 들러서 입에 침바른 말을 하는 후보들에겐 역으로 작심하고 면박을 주자는 것이다.

대선에서의 '충청도 역할'을 넘어 아예 '충청도 대통령'을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성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충청인은 이인제와 심대평에 주목한다. 97년 경선 불복 이후 무려 10년이나 정치적 낭인(浪人)으로 지내던 이인제가 와신상담으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를 꿰찬 것이나, 허허벌판에 깃발을 꽂은 심대평이 계속된 좌절 속에서도 초지일관 정치적 추구를 이어가는 것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

사실 충청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이런 투쟁성이다. 그래야 대권도 가능하다. 김영삼은 닭 모가지가 비틀리는 고난을 극복한 후 새벽을 맞이 했고, 김대중은 현해탄의 물귀신이 되려는 순간 초인적인 의지로 버텨 권좌에 올랐으며, 노무현은 후보가 되고서도 정치적 고려장을 당했다가 다시 일어섰다. 대권의 주변인, 더 냉혹하게 말해 '들러리'는 JP의 40년 문지기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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