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레
은수레
  • 김경수 수필가
  • 승인 2024.04.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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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수필가
김경수 수필가

 

거리가 왁자지껄 큰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어느 노인과 중년 남자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를 어지러히 흩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그 속에서 고물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에 현준은 눈길이 쏠리고 눈에 들어온 노인이 어디서 본 듯한 낯설지 않은 뒷 모습이었다.

그가 몸을 돌아서서 박스를 추스릴 때 박노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한때 동네에서 번듯한 철재상을 자영했었다. 봉사활동도 누구 못지 않게 활발하게 뛰어다녔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세월이 지난 지금 눈앞에서 박스와 고물을 주우러 다니고 있었다.

그는 거리의 한켠에서 고물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쏟아 놓고 박스는 박스대로 빈병은 빈병대로 깡통은 깡통대로 산산이 늘어 벌여 놓고 정신없이 하나하나 주워 담고 있었다.

현준은 어찌된 영문인지 가까이 다가가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했다. 그는 현준을 어렴풋이 아는 듯 보더니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놀면 뭐하느냐면서 심심해서 운동 삼아 박스와 고물을 줍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지만 그렇게 보기엔 뭔가 어색한 점이 현준의 눈에 비춰졌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힘겹게 고물을 주워 끌고 다니기란 운동이라기보다는 무리가 가는 벅찬 노동으로 보였다. 또한 하루 종일 팔다리가 뻐끈하게 온몸을 혹사시키며 박스와 고물을 주워 팔아본들 겨우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이었다. 그런 그가 박스와 고물을 줍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걸까 비록 많지 않지만 그가 예전에 지니고 있던 재산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의 가족은 무얼 하길래 팔십을 넘은 노인이 거리를 여기저기 고물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떠돌아야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의 재산은 여지껏 살아오는 동안에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씻기고 쓸려가듯 흐지부지 흩어져 버리고 그의 가족들도 형편과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젊었을 때와 같다면 수입을 창출할 수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노구가 되어 힘에 겨운 세상을 짊어지고 가기엔 그의 숨이 차올랐다. 그렇다 보니까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으니 하루하루가 지날 때 마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박스와 고물을 줍는다고 모두가 빈곤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노인이 되면 각자의 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그 누구가 아무리 돈이 조금있다고 해도 쓰는 씀씀이를 벌지 않고는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해가 가면 갈수록 노인의 빈곤문제는 그 심각성이 만연한 사실처럼 보였다. 가뜩이나 늙기도 서러운데 빈곤은 그 서러움을 더욱 부축이고 있었다. 문득 현준은 그의 얼굴에서 여유롭던 그 시절의 웃음이 스쳐가고 있었다. 그도 돌아보면 후한 인심으로 넉넉한 배려가 있던 사람이었다.

현준도 조기축구회를 나가던 시절 그가 베푼 해장국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그가 지금 노쇠한 몸으로 고물을 줍느라 휘청이는 겨운 몸짓에 가쁜 숨을 들이쉬면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레가 너무 작아 짐들을 받아주지 못했고 흘러내린 짐들은 다시 정리를 한 다음 수레에 실었다.

어느덧 저녁노을이 저물어 가고 박노인의 긴 그림자가 뒤뚱거리며 수레를 끌고 해질녘 거리를 빠져 나갔다. 그의 인사는 짧고 발길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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