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소동
축의금 소동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4.04.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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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동생의 결혼식 때 친정 부모님은 남편에게 축의금을 받아달라고 부탁하셨다. 믿을만한 사람이 없던 차에 하나뿐인 사위가 적임자로 생각되셨던 모양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처가의 행사에서 큰일을 맡게 된 남편은 식장을 찾은 집안 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드리며 새 사위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그런 남편 덕분에 나는 왠지 친정식구 앞에 낯이 서는 기분이었다. 결혼식의 축제분위기는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도 이어져서 아버지는 저녁상을 앞에 두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셨다. 밤이 늦어 들떴던 분위기도 가라앉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축의금 장부를 확인하던 아버지의 낯 색이 변하며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큰 액수가 들어있어야 할 친인척들의 봉투가 없었던 것이다. 모두 달려들어 확인해 보았지만 장부에도, 돈을 빼고 남은 봉투에도 친인척들의 이름은 없었다. 남편에게 모두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물가물 졸고 있다가 불똥을 맞은 남편은 친척아저씨라는 분이 옆에서 봉투를 건네줘서 받아 적은 것 밖에는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예식장 사기가 한창 있던 시절이었다. 처가식구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어리버리 축의금을 받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예리한 사기꾼의 눈에 딱 들어왔을 것이다. 사기꾼이 두툼한 봉투들을 몽땅 솎아 사라질 때까지 남편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했으니 큰 수입을 잡은 사기꾼은 얼마나 신바람이 났을까? 장가온 지 얼마 안 된 새 사위의 실수이니 누구 한사람 입도 뻥긋 못했지만 없는 형편에 축의금까지 도둑맞은 친정 부모님의 속은 많이 쓰렸을 것이다.
 얼마 전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서 결혼식장은 만남의 광장과도 같이 화기애애했다. 뒤늦게 참석한 친구 하나도 부랴부랴 축의금을 내고 우리와 합류했다. 그런데 손님을 받고 있던 신랑엄마가 그 친구를 쫓아와 왜 축의금을 신부네 집에 내고 오냐며 웃었다. 그 장면을 신랑엄마가 봤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결혼식에 와서 밥만 먹고 간 줄 알았겠다며 친구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좋은 날 사돈댁에 부조한 것으로 치자며 신랑엄마는 다시 손님을 받으러 가고, 실수를 한 친구는 이렇게 정신없는 티를 낸다며 제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축의금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군데서 들은 적이 있다. 축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내는 돈이 축의금이라고는 하지만 그 또한 돈이 얽힌 일이니 돈에 약한 사람들 사이에서 말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직장동료 중에도 축의금 때문에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에게 딸의 청첩장을 냈는데 그 친구가 식장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늦게라도 축하인사를 건넬 줄 알았는데 그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여행도 함께 다니고 이따금씩 가족이 모여 밥도 먹던 사이인 만큼 배신감이 컸던 모양이다. 정말 식장에 오지 않았던 것인지, 내 친구처럼 축의금을 엉뚱한 곳에 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축하 받고 싶었던 친구에게 축하받지 못한 서운함을 이기지 못한 남편의 직장동료는 그 친구와의 오랜 인연을 끊어버렸다.
 계좌로 축의금을 받는 일을 두고 이렇게까지 해서 축의금을 받아야하나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젠 그것이 당연시되는 시절이다. 축의금 액수도 가볍게 아는 사이는 3만원, 직장동료나 동창은 5만원, 절친이나 친인척은 10만원에서 20만원을 내라고 친절한 인터넷이 가르쳐주는 시절이다. 방법이 무엇이든 액수가 얼마이든 이웃의 경사를 축복하고자 만들어진 축의금이라는 관습이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고 아름답게 유지되길 결혼식도 많은 이 봄날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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