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노인
가을과 노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0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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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이 수 한 <청주시 지속가능발전 위원장,신부>

며칠 전 장례 예식이 있어 목련공원에 위치한 목련원이라는 장례예식장을 방문하게 됐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훌륭한 장례예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전 국토의 묘지화를 부추길 수 있는 매장 중심의 장례 문화가 화장 중심의 장례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오복(五福)에 숨어있는 조상의 지혜를 떠올려 본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사는 것, 부유하게 사는 것, 육체·심리적으로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 이웃에게 좋은 덕을 쌓고 사는 것, 죽음 준비를 잘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최고는 장수(長壽)의 복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30여년 간 국민소득 향상과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의학의 발달과 보건위생의 개선으로 점차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상승해 2000년에 7.2%를 넘어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돌입했으며, 2004년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8.7%에 이르렀다. 노인인구의 증가 추이는 더욱 가속화돼 2005년 9.1%, 2010년 10.9%, 2018년에는 14.3%가 되어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2026년에는 20.8%가 되어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어르신들은 복 가운데 최고의 복인 장수의 복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런 고령사회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장수의 복이 실현됐으나 현대 사회는 이런 현상 자체를 문제시하고 있다. 고령사회 자체가 부양 부담의 증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 받는 노인이 많아지는 것이 문제다.

노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 노인이 된다. 사람들은 마치 늙음이 남의 일인 양 생각한다. 노인복지 시설을 혐오시설로 생각하는 님비현상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님비현상이 초래되기까지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 앞서 언급한 목련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매장 문화에서 화장문화로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정부는 장례예식장이나 화장장 설치예산을 마치 노인복지 예산인양 호도하고 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이 없다. 그러나 장묘시설을 마치 노인들을 위한 시설인양 떠벌리고, 그 예산을 노인복지시설 구축을 위한 예산으로 편성하고 있다. 장수의 복을 누리고 있는 노인을 마치 돌아다니는 시신인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노인복지 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을 정부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우리의 책임 또한 크다. 사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는 자식도 없다. 노인 문제는 곧 우리 가정의 문제요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노인복지 시설이 혐오시설이라 한다면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대부분의 우리 지역은 혐오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고령사회를 향해 급속히 나아가는 우리나라 역시 혐오스런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풍요로운 결실과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 가을이다. 노인의 삶을 굳이 계절에 비유한다면 바로 이 가을이 아닌가 싶다. 땀흘려 일한 결실을 거두고 그 결실을 향유해야 하는 노인의 계절인 가을, 우리 어르신들의 삶이 이 가을처럼 아름답고 풍요롭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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