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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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찬인 수필가
  • 승인 2024.04.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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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신찬인 수필가
신찬인 수필가

 

목회자인 친구가 핸드폰으로 노래를 보내왔다. 하덕규의 자유라는 노래다. 하덕규씨는 한때 가수로서 `시인과 촌장'의 멤버였다가, 지금은 목회자로 살고 있다. 노래는 빠르고 경쾌한 스윙 리듬과 반복되는 가사로 금방 친근감 있게 들렸다.

그런데 이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자유를 반복해서 외치다가 `껍질 속에서 살고 있었네, 내 어린 영혼', `껍질 속에서 울고 있었네, 내 슬픈 영혼',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목마르게 찾았던 자유'라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나서야 작가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갖고 태어난 원죄는 하나님을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자유라는 단어는 종교적, 철학적, 역사적 개념이 가미되면 참으로 광범위하고 다의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일테면, 사르트르는 `나 자신으로 사는 삶'을 말하였고, 불가에선 죽음만이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 하였고, 도가에선 문명과 욕망을 거부하고 자연적으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한다. 정치적 의미의 자유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권리를 행사하고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자유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젊은 시절 내게 자유는 현실로부터의 도피 또는 탈출로 회상되기도 한다. 사춘기 시절에는 집이나 학교를 벗어나는 걸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늘 집과 학교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었다.

대학에 가서는 강의를 빼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배회하는 게 자유였다. 군대에 가서는 제대할 날만 기다렸고, 직장에 다닐 때는 휴일이 일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날이었다. 그렇게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다가 은퇴하였다. 그럼 나는 이제 자유를 얻은 걸까?

나이가 들고 은퇴를 하여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니, 다른 사람이나 조직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굳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조직의 규범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아침부터 노래를 불러도 되고, 답답하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여행을 가도 된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머릿속이 개운치 않은 게 있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아쉬움, 죄책감, 부끄러웠던 일들이 종종 자신을 괴롭히곤 한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좀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질곡이 나를 또 속박하고 있다.

가끔은 앞으로 도래할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몸과 마음이 나약해지고, 사회적 관계가 무너졌을 때 겪게 될 노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할 때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 때면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그때는 누가 나를 지켜 줄 것인가. 아내일까, 자식일까, 아니면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일까? 그러고 보니 노후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며 살았는데, 진정한 자유는 영영 찾을 수 없는 걸까? 목마르게 찾던 자유를 얻었다는 하덕규씨가 한없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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