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우연
기막힌 우연
  • 강석범 청주복대중 교감
  • 승인 2024.04.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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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복대중 교감
강석범 청주복대중 교감

 

체육 시간, 언제나처럼 운동장에 왁자지껄 모여선 아이들. “뛰어~!” 구령과 함께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일사불란하게 체조 대형으로 열을 맞춘다. `윙~~~' 갑자기 아이들이 모여서 있는 중앙에 일명 `똥파리'라 불리는 초록빛 찬란한 왕파리가 윙윙댄다. 왕파리가 여학생인 혜영이 주변을 빙빙 맴돈다. 나는 다가가 “이 똥파리 놈은 왜 혜영이 머리 위에 왔다 갔다 해?” 내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심지어 주저앉아 배를 움켜쥐고 웃는 녀석도 있다. 혜영이는 홍당무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울상이다. “조용~, 이놈의 똥파리를 선생님이 한칼에 해치울 테니 봐라.” 나는 들고 있던 가느다란 회초리를 허공에서 두어 번 돌리고, 똥파리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틱!' 소리와 함께 똥파리는 바닥에 떨어졌고,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와~~” 하며 우렁찬 박수로 환대한다.

무협지에서나 나올 신기의 무술을 우리 반 전체 앞에서 보여줬으니, 그날부터 나는 `특공대 출신'이라는 둥…, 아이들에게 전설이 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이들에게 물었다. “근데 그날 뭐가 그리 재밌다고 웃었냐?” “네? 혜영이 별명이 초등 때부터 똥파리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똥파리가 왜 혜영이 머리 위에 있냐?' 해서 애들이 막 웃었어요.” “뭐? 혜영이 별명이 똥파리였어?” 아하~, 그 친구 별명이 원래 똥파리인데 내가 공개 장소에서 한 방에 해치웠으니, 중1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신기하고 재밌는 우연이 있었을까….

그 뒤 10년이 흐른 어느 날, 예고 미술과 연구실. 저녁 방과 후 실기 감독을 위해 미술과 선배님들과 라면을 끓였다. 하필 라면 냄비 위로 파리가 자꾸 달려든다. 손으로 쫓아도 또 덤비길 여러 번, 녀석이 드디어 저만치 냄비 뚜껑에 조심히 앉는다. “형님들~ 내가 예전 체육수업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하며 주저리주저리 그날 똥파리 잡던 무용담을 신나게 떠들다가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이 나무젓가락으로 순간 저 파리를 때려잡는 확률이랄까?” 어이없다는 듯 껄껄대며 웃는 형들을 바라보며 나는 파리를 향해 나무젓가락을 `휙~' 날렸다. `팅~' 젓가락은 수직으로 살짝 포물선을 그리며 뚜껑에 정확히 맞는다. 동시에 나무젓가락 끝에 파리가 딱 눌어붙어 탁자 아래로 떨어졌다. 순간 연구실은 짧은 탄성과 함께 전율이….

일주일 뒤 교실, 비누 조각 수업 시간. 나른한 햇살 창문 틈으로 벌 한 마리가 들어와 순식간 교실이 아수라장이다. 평소 호들갑스런 소영이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요란 법석을 떤다. “자 조용~~, 선생님이 아주 예전 시골 학교 근무 때, 똥파리를 회초리로 때려잡은 일이 있다.” “에이~~.”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일주일 전에는 미술과 연구실에서 라면 뚜껑에 달라붙어 있는 파리를 나무젓가락을 던져 잡았다.” 아이들은 말도 안 된다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예를 들면 또 이런 거다. 조각도 잠깐 빌려다오, 이 조각도를 휘둘러 공중에 있는 벌을 잡는다면 믿겠니?”, “자 봐라~” 하면서, 교실에 날아다니는 벌을 향해 점프하듯 조각도를 휘둘렀다. 물론 나도 장난이었다. 그런데 조각도 칼날은 예리하게 벌의 몸통을 관통해 벌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를 포함, 교실 안은 순간 얼음이 되었다. 교실 저 끝에서 나지막이 목소리가 들린다. `와~ 완전 예술이다.'

※ 30여 년 전 나는 상치 교과로 체육, 한문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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