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식
봄 소식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4.04.08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들이 봄이 온 것을 적알아차리는 경로는 참으로 다양하다. 달력의 날짜를 보기도 하고, 온화해진 날씨에서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단연 봄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꽃이 피는 것이다. 매화나 작은 야생화부터 시작하여 진달래 개나리를 지나 벚꽂, 목련꽃, 살구꽃 등이 피면 봄은 더 이상 물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병연(金炳淵)은 과연 어디에서 봄이 온 것을 느꼈을까?


봄 소식(春來)

問爾窓前鳥(문이창전조) 창가에 앉은 새야 너에게 물어보자
何山宿早來(하산숙조래) 어느 산에서 묵었길래 이리로 일찍 왔느냐
應知山中事(응지산중사) 응당 산속의 사정을 알고 있겠지
杜鵑花開耶(두견화개야) 진달래는 피었더냐?

시인은 봄이 온 것을 꽃을 보고 알아채는 스타일인 듯하다. 꽃은 주로 산속에서 피기 때문에 산에 가 봐야 꽃을 볼 수 있고 그제서야 봄이 온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시인은 직접 산에 가는 대신 간접적으로 산에 가고 있다. 아침 일찍 창 앞에 날아와 앉은 새를 보고는 산속의 일을 물은 것이다.

아침 일찍 온 것을 보면 근처 산에서 잠을 자고 왔을 것이라고 짐작한 시인은 새에게 넌지시 묻는다. 그냥 지나간 것도 아니고 아예 하룻밤을 묵었을 테니 산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응당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문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꽃이 피었다냐고 물었고, 꽃 중에서도 콕 집어 두견화가 피었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것이다.

두견화는 흔히 진달래라고 불리는 꽃으로 매화나 산수유처럼 초봄에 피는 것이 아니라, 봄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다음에야 피는 꽃이다. 그런데 이 꽃은 개나리처럼 사람 사는 마을에는 잘 보이지 않고, 산속에서 듬성듬성 보이는 특징이 있다.

아직 풀이나 나뭇잎이 자라지 않은 산속이기 때문에 붉은빛을 띠는 진달래꽃은 눈에 쉽게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산속에서 잠을 자고 갓 시인의 집 창 앞에 날아와 앉은 새는 진달래가 피었다면 응당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새가 시인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했을 리는 없다. 시인은 진달래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칙상 봄이 왔음을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저기 만발한 꽃을 보고 봄을 느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도 좋지만 간접으로 꽃을 보고 그를 통해 봄을 느끼는 것도 상당히 운치가 있다. 특히 이른 아침 창 앞에 날아와 앉은 새에게 꽃 소식을 듣는 것은 얼마나 멋스러운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