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4.03.3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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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물고기라는 명칭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느 날 후배 작가가 내게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별 의심 없이 사용하는 낱말이 참 많다. `물고기'라니 물고기로선 충분히 반기를 들 불쾌한 명칭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하여 칠판 가득 “물고기는 존재하는가.” 의미심장한 논제를 써 놓고 저마다의 눈빛을 살펴보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인간에 의해 분류된 기호일 뿐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분류된 물고기처럼 외계 생명체 그 어느 것이 있어 나를 그렇게 분류한다면 좋겠는가. 그냥 물에서 사는 자연 상태의 순수 생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후 저들끼리 `물고기'를 `물친구' 또는 `물꼬리'로 불렀고 누구도 `고기'라는 말을 내지 않았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책정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인간 중심으로 명명된 분류학에 대한 전복일 거라는 호기심으로 선택한 책이다.

예상외로 분류학에서 어류는 제외될 항목이라는 내용이다. 지구상의 5분의 1인 1만3000종이 넘는 어종을 발견하여 분류한 어류학자,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에세이는 모두를 혼돈으로 밀어 넣은 책이다. 물론 우리 각자의 뇌는 폐쇄적 자기강화 메커니즘을 지닌다. 그러나 이토록 철저한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 시점으로 잘못 분류된 것들을 돌아보며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이 뒤집힌 시간이다. 생물학자인 루이 아가시는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지만, 물고기는 물속에 엎드려 있는데 사다리의 높은 위치를 차지한 유무를 통해 신이 무엇을 더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말처럼 자연은 인간처럼 비약하지 않지도 않고 가장자리나 경계선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굳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하는 것들이 부지기수이다. 다만 인간 중심으로 구분된 비존재인 채로 암흑 가운데 묻혔을 뿐이다.

이번 모임은 혼돈과 혼란 가운데 새롭게 밝혀진 이론들을 많이 배운 시간이다. 항상 독서회원 중 생화학 전공자인 박수민 박사의 특강은 늘 우리를 전율케 한다. 한때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은 정말 행복했으리라. 국어국문학도인 나도 쉽게 이해하도록 예화를 들어 설명하는 그의 타고난 교수법은 아주 경이롭다. 21세기 이 시대에 적합한 융복합의 명쾌한 강의법이다.

늘 학문에 정진하고 관련 계통의 실험을 멈추지 않는 사람, 이번에도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병행하여 읽고 정리한 10쪽 분량의 소논문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소와 폐어는 같은 조상을 갖는다고 한다. 이들에겐 폐와 후두개 있고 비슷한 심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관점에서의 진화론에 대한 올바른 재정립에 도움 될 나침판 같은 책이다.

분기학자들이 정한 타당한 생물 범주에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일부 물고기 중 다수는 저들끼리 보다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이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학생들 주장처럼 물고기는 물꼬리에서 물속사촌으로 다시 구분할 일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식 <꽃>에 반기 드는 일이다. 기존의 일반화된 절대 진리를 회의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새롭게 틀어보는 일, 그것이 건강한 진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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