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탁발 2
덕산탁발 2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3.1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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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일이 없는 것이 내 할일이라

문고리 닫아걸고

낮잠 속으로 덧없이 빠져들면

내 고적한 마음을 산새들이 알았는지

그림자가 창문 앞을 지나간다



반갑습니다.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화려한 단풍으로 가을을 물들었던 나무들이 그 이파리들을 내려놓고 체로금풍으로 그 가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단도직입형 공안인 `무문관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2'입니다.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 선사는 육조혜능에 이어 청원행사, 석두희천, 용담숭신의 법맥을 이은 제자입니다. `금강경'에 능통하여 특히 성이 주씨(周)라 주금강(周剛)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용담에 가서 숭신선사를 혼내 주려다가 오히려 절 밑에서 호떡장사를 하는 노파에게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末來心不可得)인데 어디에다 점심(點心)하겠느냐?”는 물음에 막혀 그만 숭신찾아가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암두전활(巖頭全豁·828~887)은 설봉의존(雪峰義存·822~908)과 함께 덕산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로 설봉 선사는 당시 전좌(典座)로 창고의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듯이 불교는 자비를 표방하는 종교이지요. 보통 자비는 불쌍한 사람에게 베푸는 연민이나 동정의 뜻으로 쓰이지만, 자비의 정신은 방편(方便)이란 개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편은 지금까지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어 온 듯합니다. 온전하게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임시방편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방편의 불교적 의미는 전혀 부정적인 뜻을 내포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방편이란 중생의 수준 즉 근기에 맞추어 이들을 깨달음으로 이끌려고 하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방편은 획일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동사섭으로 눈높이에 맞춘 수준별 교육이라는 겁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같지요. 물론 대학교수와 초등학생은 수준이 다를 것입니다. 당연히 두 사람에게 적용되는 방법은 달라야만 할 것이니 이런 눈높이의 교육의 정신이 없다면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읽으려는 감수성도 없으면서, 어떤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상대방은 오히려 자비는커녕 마냥 피곤해 할 지도 모릅니다.

방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살펴보도록 하고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3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 무각스님과 함께하는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종횡무진 자유로은 선(禪)과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부디 행복하시고 여여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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