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품은 악기 `마두금'
믿음을 품은 악기 `마두금'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12.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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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인간은 사람들끼리만 유대감을 나누며 살지 않는다. 자연과 동물 그리고 사물과도 정을 나누고 신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신의는 이야기로 살아남아 `설화'라는 형태로 수천 년을 내려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 그러기에 옛이야기에는 사람의 속내와 행태가 만 가지의 화소들에 녹아 있어 좋고 자연환경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는 화소들의 특성을 알아가는 것이 흥미롭다. 요즘 옛이야기에 심취한 이유다.

옛이야기의 주된 교훈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관계에서 발생한 권력의 오남용을 비난하는 권선징악이 많다. 설화의 주체가 민중이다 보니 강자들이 휘두르는 힘의 부당함은 `오늘의 삶'인 현실 속에 있었을 터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 속에서 용기와 위안과 믿음을 나누는 따듯한 관계를 추구하는 민중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내몽골의 민담을 그려낸 <수호의 하얀말/오츠카 유우조 글/아카바 수에키치 그림/한림출판> 또한 지배자의 힘에 유린당하는 백성의 이야기지만 권선징악을 표면에 두기보단 그 속에서 진하게 우러나는 동물과의 신의를 이야기한다.

<수호의 하얀말>은 몽골의 전통 악기인 마두금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몽골의 세계관이 담겨있기도 한 그림책이다. 수호는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늙은 할머니와 외롭게 살아가는 양치기 소년이다. 그런 수호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친구가 있다. 들에 버려진 갓 태어난 하얀 망아지다. 정성을 다해 수호는 돌봐 준다. 건강하게 자란 하얀말은 늑대들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일로 수호에게 마음을 보낸다.

그즈음 `말타기 대회에서 1등 하는 자는 원님의 사위로 삼겠'다는 마을 원님의 공약이 온 초원을 바람 따라 떠돌다 수호의 귀에까지 들어온다. 수호도 하얀말과 함께 출전한다. 당연히 1등이다. 이쯤 되면 누구든 결론을 추측 가능할 것이다. 힘차고 멋진 말과 부와 기백을 겸비한 강한 청년이길 기대했던 원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하필이면 가난한 양치기임을 한탄하며 말은 빼앗고 수호에게는 상 대신 매를 쳐 내쫓는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위정자들의 부조리는 어찌 이리도 한결같은지….

이야기의 진행은 우리의 예상대로다.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수호가 있는 집으로 내달려 도망가던 하얀말은 군사들이 쏜 화살에 맞아 수호의 눈앞에서 죽고 만다. 이 시점이 갈림길이다. 심기일전하고 원님에게 복수를 할건지, 패배감을 안고 없었던 일인 듯 잊고 살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 갈 것인지… 여러 방향의 길이 놓여 있다. 독자들은 이 갈림길에서 사념에 잠긴다. `나라면…' 해답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하얀말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고 없지만 두고두고 하얀말과 함께 할 방법을 수호는 찾아낸다. 하얀말의 뼈와 가죽과 심줄 그리고 털을 모아 악기를 만든다. 이것이 마두금의 시작이다. 실의에 빠져있던 수호는 악기를 연주하며 하얀말이 보여준 믿음과 신의를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신의와 사랑이 녹아 들어간 마두금이기에 듣는 이들은 선율 속에 묻어 있는 그들의 애틋한 관계를 몸으로 알아챈다. 산고의 고통으로 몸부림하며 힘들어하던 말들도 마두금 선율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진정하며 어린 말을 보호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함께보다는 개인을, 공존보다는 종속을 우선시하는 사회변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옛이야기, 음악, 미술, 문학 등을 접하며 천천히 자연과 함께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나는 그림책을 본다. 시대를 관통하며 다가오는 바람, 시절 인연을 뚫고 날아오는 힘들을 옛이야기의 후덕함으로 쓰다듬어 새로운 바람으로 남길 바라며 문학을 향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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