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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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12.0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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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세월의 흐름은 일정하고 연속적이라서 끊어지지도 되돌려지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햇수 내지는 연도 개념은 편의적으로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월을 구분 짓는 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한 해가 오고 가고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세월을 한 해 단위로 잘라 인식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되는가 하면 한 해가 저물어 가기도 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고 느끼는 시기에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저런 시름에 빠지곤 하는데 육조(六朝) 시기 송(宋)의 사령운(謝靈運)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모(歲暮)

殷憂不能寐(은우불능매) 깊은 시름 겨워 잠들 수 없고
苦此夜難頹(고차야난퇴) 이를 괴로워하여 밤을 지나기 어렵네
明月照積雪(명월조적설) 밝은 달은 쌓인 눈을 비추고
朔風勁且哀(삭풍경차애) 삭풍은 매섭고 처량하네
運往無淹物(운왕무엄물) 사계절의 운행은 머물러 있지를 않으니
年逝覺已催(년서각이최) 이 해도 서둘러 지나가는구나

시인은 깊어진 시름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시름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잠자리에 누워서 밤을 지새기 어려울 만큼 크다.

그래서 시인은 방을 나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겨울 밤 바깥의 풍광은 밝은 달과 매섭고 처량한 찬바람으로 대변된다.

달이 다시 밝아진 것이나 바람이 매서워진 것은 다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이 잠 못 든 이유가 밝혀진다.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근심했던 것인데, 한 해가 저무는 밤이니 그 고통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열두 장의 달력이 달랑 한 장만을 남긴 십이월이 되면,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게 마련이다.

세월의 흐름은 곧 자신의 늙음이다. 거역할 수 없는 나이 듦에 사람들은 절망하고 체념한다.

이럴 때 방 안에서 시름에 젖어 있는 것은 큰 고통이다. 특히 밤이 그러하다.

춥고 어둡지만 과감히 밖으로 나와서 자연의 묵묵한 흐름을 보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삼라만상을 만날 수 있고, 이에서 큰 위안과 늙음에 대한 달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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