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가 살아나려면
필수의료가 살아나려면
  • 박경신 순천향대 의대 외래 교수
  • 승인 2023.11.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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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경신 순천향대 의대 외래 교수
박경신 순천향대 의대 외래 교수

 

나는 의사이지만 나도 환자가 될 수 있고 내 가족이 환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가 대학병원에서 뇌종양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수술 중이나 수술 후에 사망해도 나는 분명히 주치 의사에게 고맙다고 수고하셨다고 할 거다. 87세의 늙은 내 아버지를 주치 의사가 왜 죽이려 하겠는가? 보기만 해도 안타까운 미숙아를 이대 목동병원 소아과 교수들이 왜 죽이려 하겠는가?

고의가 아닌 의료 사고에 처벌은 없어져야 의사도 소신있게 사명감을 가지고 진료할 거다. 이건 의사 증원 안해도 가능하다. 그래야 필수 의료가 살아난다. 아니면 필수의료는 답이 없다. 의대 증원하면 필수 의료가 해결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애 많이 낳으면 농촌 총각 다 결혼한다는 사람들이다. 의대 정원 늘리면 의사야 늘겠지만 필수 의료 인력이 늘 거라는 꿈을 깨시라. 의대 정원이 휠씬 적은 30년 전에도 내과·소아과는 서로 하려하고 필수 의료가 이렇지는 않았다. 필수의료라는 개념도 없었던 2001년만 해도 대한민국 의사 수는 7만5000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필수 의료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2023년 대한민국 의사 수는 14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의사 수는 두배가 됐지만 국민들은 20년 전에도 하지 않았던 필수의료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필수의료가 붕괴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필수의료분야의 낮은 수가가 원인이 되는 경우다. 우리나라 의료수가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볼 때 48 정도로 OECD 국가의 평균인 72에도 훨씬 못 미친다. 2017년 기준 자연분만 수가는 미국이 1만1200달러이고 한국은 1040달러에 불과하다.

둘째, 필수의료분야의 의료사고나 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부담이 크다.

최근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악의적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책임보험, 조정·중재, 합의, 형사처벌 특례조항 등 비형사적 구제 방법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환자나 응급의료분야 대신 미용·피부·도수치료와 같은 소송 위험이 적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셋째,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역학적 변화에 따른 의사 인력 수급의 불균형도 문제다. 저출산 문제는 오래전부터 예견되고 있었음에도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의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미흡했다.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필수분야 의사의 배치나 전체 전공의 인력 수급 계획에 인구 역학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히지 못하다 보니 의사 수급의 불균형이 나타났다.

의사가 많아서 나쁠 거야 없다. 그러나 그 만큼 의료비가 증가한다. 선진국에서 이미 경험한 이야기이다. 의료비를 더 낼 생각 안하고 의사만 많았으면 한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필수의료를 살리는 자원 재배치가 먼저다. 대한민국 의료는 가성비와 접근성에서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어령이 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의사들은 의료사고 겁내서 수술을 안해주려고 한다. 한국에 가자. 한국 의사들은 의료사고 위험이 적어 소신 있게 수술하며, 마음이 따뜻하고, 손이 작아 손기술이 좋다. 한국의사들에게 가자.” 이제 다른 나라 이야기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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